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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실크로드 도자기와 머그컵

입력
2017.05.0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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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실크로드’처럼 낭만적이면서 아이러니한 명칭은 없다. 이름은 비단길이지만 실제로는 황량한 모래바람만이 휘몰아치는 죽음의 여정, 이것이 바로 실크로드이기 때문이다. 법현은 <불국기>에서 ‘하늘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땅 위에는 짐승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지평선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마른 해골만이 이정표가 된다’고 적고 있다.

이 길이 실크로드가 된 것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에 의해서이다. 그는 1877∼1912년까지 총 5권으로 된 <중국>이라는 책을 저술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서 교역로를 통해 실크가 거래된 점을 착안하여 이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실크는 붓다 당시 인도에서도 생산되던 물건이었다. 즉 유럽의 입장에서 실크는 굳이 중국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는 품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는 어떻게 천 년을 넘는 견고한 생명력을 가진 거대한 무역로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도자기 중 자기의 교역이 이 길을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실크로드라기보다는 ‘자기로드’가 보다 정확한 명칭인 셈이다.

자기는 1,300°이상 되는 고온에서 자화현상이 일어나 높은 강도를 획득하는 그릇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1,300°이상 올라가는 가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질료인 고령토의 유무이다. 왜냐하면 일반 흙은 1,200°이상 올라가면 흘러내리면서 주저 앉아버리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자기가 발전한 것은 강서성 경덕진 북쪽의 고령산에서 자기의 원료가 되는 특수한 흙이 발견되면서이다. 고령산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를 고령토라고 하는데, 이것을 두 번째로 발견한 나라가 바로 고려이다. 즉 자기에는 질료의 희소성 문제가 존재하며, 이 때문에 기술이 있어도 계속해서 수입해야만 하는 필연성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자기를 만들게 되는 것은 과학이 발전하는 18세기가 되어서이다. 이 때문에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로 넘어간 자기는 같은 무게의 금으로 거래되곤 하였다.

그런데 유럽인이 자기를 만들게 되자 단 번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그것은 잔 즉 컵에 손잡이가 붙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 천년이 넘도록 없던 손잡이가 유럽에서는 자기의 시작과 함께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동아시아의 한계와 유럽의 우수성을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머그컵에 손잡이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그렇다면 천년 이상 자기문화가 번성한 동아시아에서는 왜 잔에 손잡이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 이것은 문화의 미개성이 아니라,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서로 다른 문화배경에 의한 특수성 때문이다.

오늘날 소주잔이나 맥주잔에도 손잡이는 없다. 그것은 실용성과 동아시아 문화에만 존재하는 특수성, 즉 잔을 돌리는 문화 때문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잔을 돌리는 것은 동료의식을 고취시키는 한 방법이다. 이렇게 잔을 돌리는 상황에서 만일 손잡이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거추장스러운 불편함이 된다. 또 다도를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찻잔을 씻을 때는 차를 마신 그 자리에서 잔의 아래쪽 굽을 잡고 돌려가면서 세척한다. 이때에도 잔에 손잡이가 있게 되면 매우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다. 즉 잔을 돌리는 문화배경과 세척방식 때문에 동아시아의 자기 잔에는 손잡이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유럽의 개인주의 속에서는 잔에 손잡이가 있는 것이 필연적이다. 즉 자기는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전파되었지만, 유럽은 다시금 손잡이를 단 머그컵을 동아시아로 진출시켜 문명의 차이점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동서의 교역로인 실크로드는 오늘날에도 열린 채로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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