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내달 9일의 전당대회 대표 경선 출마를 고심 중이라고 한다. 애초에 당권 경쟁에 뜻이 없다던 서 의원이 주변 의견을 들어보고 조만간 가부 결정을 할 것으로 알려진 것은 일부 친박계의 끈질긴 출마 요청 때문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을 이끌 의지가 있고, 비전이 섰다면 누구든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출마할 수 있지만, 적어도 서 의원만큼은 다르다고 본다.
명분이 설 때 깃발을 들어야 하고, 명분에 따라 진퇴가 분명해야 하는 게 정치의 상식이자 일종의 예(禮)다. 그런데 서 의원은 본인 스스로가 고사해 왔듯, 경선 출마의 뚜렷한 명분을 찾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4ㆍ13 총선에서 참패해 과반 의석이 무너진 것은 주지하듯 전에 볼 수 없었던 공천 파동 때문이다. 여론의 잇따른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친박계의 패권적 보복 공천이 국민 공분을 샀던 게 엊그제 일 같다. 친박계의 맏형이자 당시 최고위원이던 서 의원이 비박계 ‘공천 학살’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방조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다. 나아가 총선 참패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당권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잠시 인정했던 정치적 책임을 뒤늦게 외면하는 모순이다. 무책임하다는 말과 함께 노욕(老慾)이라는 비판까지 듣기 십상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누리당에 시급한 체질개선, 즉 당 혁신을 주도할 만한 위치나 입장에 있지 않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혁신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고, 전당대회 역시 혁신의 장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계파 혁파와 쇄신이 새누리당의 당면 과제임을 감안할 때 친박계 옹립을 받은 서 의원이 계파 청산의 적임자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만에 하나 서 의원이 대표로 선출될 경우 계파색채가 더 뚜렷해질 것이고, 계파갈등 또한 격화할 우려가 크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끝자락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에 적임자라고들 말한다. 최근 청와대 오찬에서 “당의 중심을 잡아줘서 고맙다”는 박 대통령의 덕담을 듣는 바람에 청와대가 밀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당의 화합에 원로의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우선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당권을 놓지 않겠다는 친박계의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
여당 원로로서 서 의원은 ‘계파심’보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의 미래와 자신의 정치적 명예를 소중히 여겨 명분 없는 일에 뛰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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