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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 해적

입력
2016.10.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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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왜구(倭寇)뿐만 아니라 중국 해적에게도 많이 시달렸다. 16~18세기 무렵이다. 왜구를 막기 위해 해금(海禁) 정책을 펼쳤던 명나라가 쇠락하고 청나라가 부상하는 동북아의 격변기는 중국 해적의 발호와 궤를 같이 한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중국 해적을 일컬어 황당인(荒唐人)이나 해랑적(海浪賊)이라 했다. 해랑적은 요동반도에 있는 해랑도를 거점으로 하는 해적으로 우두머리는 왕을 참칭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풍모는 머리를 깎고 호건(胡巾)을 썼으며 옷차림은 희거나 혹은 검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 상고선(商賈船ㆍ무역선)이나 우리 어선을 상대로 노략질을 일삼던 중국 해적선은 요동반도에서 가까운 황해도 해역 일대에 자주 출몰했다. 숙종 38년에 임금은 “황당선이 나오지 않는 해가 없는데 금년은 특히 황해도에 더욱 많으니 매우 염려스럽다”며 경계를 철저히 하고 발견 즉시 추적해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무기 대신 돌멩이만 싣고 다닌 해적선이 있는 반면 우리 수군을 상대로 화살을 쏘며 적극적으로 대응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조선의 수군이 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선조는 “회초리로 때려 다스릴 만한 해랑도의 두건 쓴 도적들마저 우리 장수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 산송장이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며 천하에 무용(武勇)도 기세(氣勢)도 없는 나라라고 통탄했다. 해랑적을 체포할 대책을 세우라고 명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우리 해상에서 횡행하고, 심지어 나포에 나섰다가 되레 병선(兵船)을 빼앗기기까지 한 때문이다. 해적선의 무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만큼이나 우리 장수 또한 용렬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다.

▦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인지 서해가 해적과의 싸움터나 다름없이 변했다. 최근 소청도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단속에 나선 우리 해경의 고속단정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경에 대항하기 위해 온갖 흉기로 무장한 중국 선원의 포악함은 이미 도를 넘어 해적 수준에 가까워졌다. 중국 어선은 세계의 대양 곳곳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아 해당 국가와 충돌을 빚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우리 군경이 해적에 준하는 상대로 여겨 험하게 대응해야 마지못해 행동에 나서겠다는 심산일까.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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