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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꼼수, 나가미네의 오만… 속보이는 일본의 얕은 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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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꼼수, 나가미네의 오만… 속보이는 일본의 얕은 꾀

입력
2017.04.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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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4일 귀임을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4일 귀임을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그가 돌아왔다.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 얘기다.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자리를 박차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를 오매불망 기다린 건 아니지만, 기자로서 소임이 외교안보 분야인지라 언제쯤 돌아올지 간간이 동향을 살피곤 했다.

외교에서는 가끔 상대국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대사를 소환하는 경우가 있다. 대사관을 폐쇄하거나, 국교를 단절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사야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다. 김정남 피살로 가장 당혹스러웠을 말레이시아마저 사건 발생 초기의 호기와는 다르게 끝내 북한과 단교라는 파국까지는 가지 않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해도 막연히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발언과 이후의 행동을 보면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이건 간신히 메워진 땅을 곡괭이로 후벼 파다 못해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 격이다.

일본 대사는 왜 돌아왔을까

나가미네 대사는 귀국 일성으로 위안부 합의 이행을 강조했다. 아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콕 집어 마치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과 만나자고 내던진 대목을 보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상대로 윽박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국간 가교가 돼야 할 대사의 언행치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망발이다. 한국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스킨십을 넓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마당에 몸을 낮추기는커녕 개선장군마냥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일본에 가 있던 85일간 고작 이런 꿍꿍이를 짜냈나 안쓰러울 정도다.

9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도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극약처방을 내린 적이 있다. 2008년 7월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영유권을 명기하자 항의 표시로 권철현 대사를 불러 21일 만에 돌려보냈다. 당시 권 대사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신뢰회복과 신뢰구축을 강조하며 신뢰를 무너뜨린 일본을 에둘러 비판했다. 일본 총리를 직접 겨냥하거나, 한풀이하듯 일본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저격수’로 나선 나가미네와는 사뭇 달랐다.

일본이 이처럼 대사를 앞세워 격하게 반응한 데는 상당한 국내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일본 내에서는 “이 참에 한국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관저 중심의 강경파와, “속히 대사를 보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외무성 중심의 온건파가 대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나가미네 대사가 한국에 돌아오려면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다.

기회가 없던 건 아니다. 우리 외교부가 2월 중순에 부산 동구청에 공문을 보내 소녀상 이전을 요청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누차 ‘국제 예양’을 들어 소녀상 설치의 부적절함을 지적한 것은 사실 일본을 향한 제스처였다. 하지만 일본이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서 무려 석 달 가까이 대사가 집을 비우는 ‘장기 가출’이 지속됐다.

무리한 연쇄 면담은 명분 쌓기용

일본이 황 권한대행뿐만 아니라 한민구 국방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도 명분을 쌓기 위한 고도의 술수로 읽힌다. 주한일본대사관은 나가미네 대사가 돌아온 4일에는 무관을 통해 한 장관에게, 5일에는 외교부를 통해 황 권한대행과 홍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소녀상 카드가 예상대로 먹히지 않자 북한의 도발위협(국방부)과 남북관계(통일부) 등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내세워 나가미네 대사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고 포장하려던 심산이었다. 한국이 아닌 일본 국민을 향한 메시지다. 마침 5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또다시 발사하면서 일본의 계산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일거에 면담을 거부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물론 대사는 본국 최고지도자의 특임을 맡은 ‘특명전권대사’이기 때문에 장관을 만난다고 해서 ‘급’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당시 한민구 장관과 나가미네 대사가 서명권자로 나란히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나가미네를 ‘박대’한 것은 일본의 꼼수를 미리 간파했던 결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8일 “황 권한대행과의 면담은 외교부가 아예 총리실에 공식 전달하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일국의 대사를 너무 홀대할 수만은 없어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6일 나가미네 대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정부는 조만간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조만간 나가미네 대사를 만나 그간의 사정과 일본 정부의 입장을 폭넓게 들을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가미네 가출 사건’은 봉합됐다. 하지만 양국이 신경전을 벌인 시간에 비해 얻은 성과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오히려 퇴행적이고 잘못된 선례를 만든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질 뿐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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