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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탄핵 이후

입력
2016.12.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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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재적 300명의 국회의원 중 299명이 참여한 국회 표결에서 234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탄핵소추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표결 직전까지 정치권 내에서 논란이 분분하였지만, 최종적인 표결 결과에 나타난 대한민국 대의민주주의의 선택은 명확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회 결정의 배경에는 주최 측 추산 전국 200만명 이상이 모인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민심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정지되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가능한 한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게 심리를 진행하고 헌법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내년 1월, 그리고 3월에 각각 임기가 만료되는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이 있기는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과 시급함을 고려하면 그 사정이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탄핵심판절차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목소리가 있다. 지금과 같은 정치적 상황의 해결을 위해 헌법상 마련되어 있는 절차를 따르기로 한 이상 그 절차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더 나가면 정략적인 주장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탄핵심판 그 이후이다. 집회현장에서 200만명이 넘는 촛불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어느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질서정연함과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틀림없이 자랑스러운 일이고 대한민국에게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이 될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매번 그와 같은 방식을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광장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그 광장에서 표현된 정치적 요구들은 정당제도와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거쳐 공동체의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광장에서의 대중민주주의가 의회에서의 대의민주주의 과정을 매번 압도하거나 이끌 수는 없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민주주의 과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번 탄핵소추의결에 이르는 정치과정에서 분노와 좌절의 상황에서도 광장의 시민들이 극도의 자제력과 시민의식을 보이면서 주장하고 성취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지금의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새로운 대통령을 조금 더 일찍 뽑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말 현재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기성의 정치인들이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서는 공정함(fairness)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스토리 속에는 그 공정함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과 기대를 바닥까지 남김없이 짓밟는 모든 요소들이 등장한다.

그 공정함에 대한 갈망의 배경에는 지금까지 해온 것과 같은 지속적인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보다 다들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꾸준히 높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되고 있었고 각 개인들 입장에서 서로 나누는 몫에는 차이가 컸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각자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었던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고 그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나면 다시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은 압박 속에 노출되어 있다. 이번 사태는 국민들 마음속에 뭉쳐지고 있던 분노와 좌절의 폭탄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정치권이 이번 일을 계기로 드러난 국민들의 공정함에 대한 기대와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 상황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탄핵 그 이후가 문제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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