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이구
문학평론가

등록 : 2015.11.27 10:56
수정 : 2015.12.01 18:26

[김이구의 동시동심] 서리 내린 아침

등록 : 2015.11.27 10:56
수정 : 2015.12.01 18:26

서리 내린 날 아침 들길에 나가 보니 누군가 “뚝뚝 흘리고 간 배추 겉잎”에도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된서리가 덮인 배추밭은 배추를 모두 뽑아 가서 참 다행이다. 밭주인은 엊저녁에 서둘러 늦은 김장을 하고, 지금쯤은 불목(불길이 잘 드는 온돌방 아랫목의 가장 따뜻한 자리)에 편안히 앉아 쉬고 있을 듯하다. 미처 김장을 다 마치지 못했더라도 마음만은 느긋하리라. 서리 내린 날 아침 시골 풍경이 눈에 선히 그려지며, 제때에 맞춰 일을 마무리한 사람의 평안한 미소가 부러워지는 시이다.

전국 곳곳에 첫눈이 꽤 내렸다. 김장 나눔 소식도 들린다. 거리에 나가면 이탈리아, 멕시코, 인도, 태국 등 전 세계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고 퓨전 음식도 흔하지만, 김치의 깊은 맛을 대체할 만한 음식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 해 먹을 김장을 담그고 나면 잔 근심은 다 잊을 만큼 마음이 든든해진다.

서리는 눈보다도 더 매서운 시련을 상징한다. “혼자서 떠 헤매는/ 고추잠자리,/ 어디서 서리 찬 밤/ 잠을 잤느냐?”(권태응 ‘고추잠자리’),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우에 서다”(이육사 ‘절정’). 성큼 다가온 겨울, 국민에게 호통 치고 오기 부리는 독선 정치는 그만 멈추고 된서리 맞기 전에 불목이나 따끈하게 데워줬으면 좋겠다.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완전범죄는 없다] 1년 반 동안 할머니만 세 차례 들이받은 운전자… 우연이었을까
리용호 '美 전략폭격기, 영공 안넘어도 자위대응'
양대지침 폐기됐지만… “경직된 노동시장 회귀는 곤란”
정현백 장관 “성평등 TF서 남성혐오도 함께 다루겠다”
“영어 1등급 필수” 학원 막판 마케팅 기승
최첨단 생체인증, 은행 따로 ATM 따로… 불편하네
‘킬러’가 사라졌다...한국 축구의 현주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