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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SNS 가짜뉴스 맹신… 정부ㆍ사회 향해 불신 폭발

입력
2018.06.1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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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산되는 거짓 정보 ‘촛불=알바’ ‘김정은 대통령 만들 것’ 카톡 타고 가짜 뉴스 일파만파 지인끼리 공유하며 믿음 더 커져 # 극우 동영상 채널 인기 ‘대국민 사기극’ 자극적 문구에 큰 글씨로 노인 타깃 마케팅 근거 약해도 구독자수 지상파 넘어 # 폐쇄적인 노인 커뮤니티 “네트워크 관계에서 이의 쉽지 않아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도 큰 비중” “신문ㆍ방송 믿지 못해” 관심 끊어
1년째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한기(가명)씨가 자신이 속한 금융사기 피해자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돌고 있는 가짜뉴스를 공개하고 있다. 김한기씨 제공
1년째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한기(가명)씨가 자신이 속한 금융사기 피해자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돌고 있는 가짜뉴스를 공개하고 있다. 김한기씨 제공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진짜 뉴스’를 보여준다니까.”

서울 서초동에서 지난해 상반기부터 꾸준히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한기(67ㆍ가명)씨는 1년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공유된 뉴스로 정치ㆍ시사 이슈를 접하고 있다. 그를 포함해 금융사기 피해자 100여명이 만들었던 이 채팅방은 어느새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뜻하는 은어)’와 가짜뉴스, 유튜브 영상 등 김씨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김씨가 단체 채팅방에서 공유한 뉴스를 보면, ‘남한ㆍ북한ㆍ중국이 공산연방제를 체결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100% 사실이다’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과 함께 ‘꼭 퍼뜨려 달라, 곧 삭제된다’는 말이 달려 있다. 매일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유튜브 보수 진영 인사들의 라이브 시사 방송을 시청하는 그는 지난해부터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합편성뉴스채널에는 아예 눈길조차 보내지 않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노인들 사이에서 가짜뉴스를 선호하고, 끼리끼리 공유하며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인식의 왜곡이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진위 여부가 흐린 정보들이 노인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차지하고 또래집단에서 독버섯처럼 번져가며, 가짜뉴스에 이성이 마비된 일부 노인은 다른 세대와의 소통이 단절된 폐쇄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현 정부와 사회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정희성(70ㆍ가명)씨도 수개월째 방송 수신료 2,500원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정씨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읽던 신문도 절독했다. 정씨는 “집에서 TV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다는 소리만 할 뿐 우리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 수신료를 조금도 보태기 싫었다”라며 “현실을 제대로 알려면 뉴스를 끊고 (보수 진영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꼭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 15명 중 5명가량이 기존 언론보다 SNS뉴스, 팩트(사실)가 검증되지 않은 소문, 보수인사 유튜브 뉴스를 더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가짜뉴스는 노인 집단 사이의 갈등도 유발한다. 가짜뉴스를 믿지 않는 노인들은 이를 유통하며 신뢰하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며 절교하는 상황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 기술직으로 근무했던 홍지만(70ㆍ가명)씨는 전 직장 동료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은지 오래다. 홍씨의 전 직장 동료는 지난해부터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했다’라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법적으로 올해 2월’과 같은 가짜뉴스를 보내고 함께 퍼뜨려 달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홍씨는 “대선 시즌부터 홍준표 후보를 찍으라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뉴스를 휴대폰으로 보내 아예 답장을 안 했더니 요즘엔 연락하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이모(65)씨는 “학생들에게 돈을 줘 촛불집회로 불러들였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카톡이나 밴드로 보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날 지경”이라며 “모두 지인들이 보내지만 해당 주제를 가지고 대화해봤자 싸움만 날 것 같아 무시하고 산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홍지만(가명)씨가 전 직장 동료로부터 받은 가짜뉴스의 모습. 3개월 전인 같은해 5월 대법관 중 최명진이란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됐지만 이 같은 가짜뉴스는 일부 노인 사이에서 꾸준히 유통됐다. 홍지만씨 제공
지난해 8월 홍지만(가명)씨가 전 직장 동료로부터 받은 가짜뉴스의 모습. 3개월 전인 같은해 5월 대법관 중 최명진이란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됐지만 이 같은 가짜뉴스는 일부 노인 사이에서 꾸준히 유통됐다. 홍지만씨 제공

이런 노인들이 구미에 맞는 뉴스를 소비하기 위해 구독(팔로)하는 유튜브 동영상 채널은 언론인 출신을 포함한 보수 인사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인기 채널의 경우 구독자 수는 16만~20만명에 달한다. 유튜브 내 지상파 3사의 뉴스 채널 구독자수(KBS 19만명ㆍMBC 15만명ㆍSBS 24만명)와 대등한 수준이며, 한 인기 극우 인사의 동영상 채널 누적 조회수는 1억4,000만회를 훌쩍 넘길 정도다. 이런 채널들에서 공유하는 영상 첫 화면 대부분은 노인이 한눈에 읽기 좋은 굵고 큼지막한 글씨로 ‘고용참사’, ‘대국민 사기극’ 같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자극적인 문구나 ‘김정은 대통령 만들기가 시작됐다’ 등 근거가 빈약한 제목이 태반이다. 모두 가짜뉴스라고 하긴 어려워도, 선동적이고 극우적인 내용이 많다.

이처럼 온라인의 정보를 맹신하는 노인들은 신문과 방송 등 기성 매체들이 불공정한 보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사업가 출신 박모(63)씨는 최근 1년째 정치 뉴스는 오직 보수 인사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접하고 있다. 박씨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못 하는 경제 영역에 대해 보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은 정규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아예 이쪽만 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71) 할머니는 “내 할아버지부터 조선일보를 읽기 시작해 아들까지 4대째 구독하다가 얼마 전 끊었다”라며 “편파보도 때문에 보던 신문을 다 끊고 나니 볼 게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보수인 사람들은 당연히 ‘정규재TV’ 같은 거 봐야지, 나는 정규재 칼럼을 구독해서 꼭 본다”며 “정말 돈 주고도 못 보는 강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애들이 너무 정서적인 게 없고 반미치광이들밖에 없다”며 “전교조가 정말 엉터리로 가르쳐서 안타깝고 우리 세대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걱정돼서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택시 운전기사 오모(64)씨도 “신문은 다 똑같아 읽지 않고 방송 뉴스도 안 본다. 정치 뉴스는 전부 거짓말이다”며 “유튜브는 신뢰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쉬는 날은 하루에 5~6시간 유튜브를 보며, 팟캐스트 ‘신의한수’와 조갑제TV의 영상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뉴스를 즐겨 보는 노인 대부분이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신뢰하는 지인이 직접 공유했다는 공동체 의식에 붙들려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점차 기존 매스미디어를 멀리하면서 정보의 단절 상황에 빠져든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를 더 신뢰하는 데다 자식과도 잘 대화하지 않아 폐쇄적인 네트워크 안에 떠도는 정보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수용하기 쉬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식이나 주변으로부터 제대로 존경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메신저로 정보를 ‘배달’해 준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라며 “기존 미디어를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데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게 힘들어 가짜뉴스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가짜뉴스의 생산을 막고 다양한 집단과 소통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민 교수는 “핵심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해 노인을 호도하려는 세력을 조사하는 것”이라며 “어렵겠지만 또래나 다른 세대 등 주변에서 가짜뉴스를 읽는 노인을 비판하기보다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한노인회 등 노인 관련 단체에서 최소한 정확한 뉴스를 알리는 노력이 더해져야 노인들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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