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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봄맞이 때청소

입력
2017.02.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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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성큼 다가왔다. 묵은 때를 벗기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엘 갔다.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 하는 동네 목욕탕. 오렌지 빛깔 타월을 두 장씩 받아 들고, 신발은 벗어 신발장에 넣고, 허술한 커튼을 젖혔다. 탈의실 겸, 매점 겸, 간이 식당이자 메이크업 룸인 내실 한가운데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고, 한 쪽 벽에는 옷장들이 아래 위 두 줄로 서 있다. 옷장 옆 선반에는 단골들이 맡긴 알록달록한 목욕바구니들이 나란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평상에서는 언니,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는 주인과 손님들의 수작이 재미나다. 반짝이가 붙어 있는 하나도 안 예쁜 옷을 예쁘다 입어 보라 권하고, 과일을 깎아 나눠 먹고, 뚱뚱한 어깨에 부항을 붙여 주며 ‘아랫배가 홀쭉하네잉~’ 거짓말을 한다.

“따님이랑 같이 오셨네요? 난 아들만 둘이라… 부러워요.” 처음 만난 머리 허연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그러게요, 딸이 있으니 좋네요.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죠.”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우리 엄마, 공연히 으쓱한 기분이 되어 아들만 둘인 아주머니를 위로 한다.

목욕탕 안에는 할머니 따라온 두어 살 뽀얀 아기가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 마신 빈 우유통이 아기의 손에서 배가 되어 대야 위를 떠다녔다. 구석에서는 가슴 막 자라기 시작한 처녀 아이 둘이 소곤대며 몸을 씻고 있다.

“엄마 때밀이 아줌마한테 때 밀래요?” “미쳤어? 왜 그런 데 돈은 써?” 엄마의 지엄한 말씀에 나는 엄마의 등에 비누칠을 하고, 엄마는 내 등을 연두색 이태리 타월로 문지르신다. 오래 전 초등학교 때 나의 단골 세신사는 7번 아줌마였다. 엄마가 목욕탕에 동행할 수 없을 때는 7번 아줌마를 찾아 몸을 씻었다. 그 시절 대중목욕탕에는 빨래를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 있었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는 빨래비누를 문질러 벗은 속옷과 수건을 빨았다. 두꺼운 겨울 내복을 빨지 않는 것 정도가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목욕탕을 나왔다. 엄마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데 들어갈 때보다 햇살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직 바람 쌀쌀하고 수은주는 자주 영하에 머물고 있지만 봄을 이기지 못하는 겨울은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봄을 맞으러 어디 남도에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봄기운 오르기 시작한 들판을 자동차로 드라이브 하며,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노래하던 어느 타이어 광고가 떠올랐다. 아니 그 광고 속 싸이의 노래가 생각났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Song) 까만 밤을 지나야 해가 뜨듯이/ 차디찬 겨울 지나야 봄이 오듯이/ 고통의 시간을 지나/ 그래 보자 누가 이기나/ 끝내 좋은 날이 온다 반드시/ 걱정 말아요 그대/ 반드시 이유가 있겠지/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인생 다시 살어/ 좋은 날이 올 거야/ 인생 우는 만큼 웃는 거야 (금호타이어 영상광고카피)

가수 싸이와 금호타이어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지난 해 4월 만들어진 이 광고는 일상에 지친 젊은이들이 위로 받고 기운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광고 카피는 싸이의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노래 가사로 거의 채워져 있다. 함께 녹음한 로커 전인권의 목소리가 삶이 힘든 이들을 토닥토닥 위로한다.

솔직히 말하면 겨울 뒤에 봄이 올 것을 알면서도 겨울을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다. 유독 내게만 기나긴 겨울이 계속될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봄은 오고 지천에 겨울을 이긴 봄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묵은 때 활활 벗긴 내 몸에도, 여든 네 번의 길고 추운 겨울을 넘긴 우리 엄마의 몸에도 싱그러운 봄기운이 넘칠 것이다. 겨울 내내 그렇게 한마음으로 촛불을 밝혔으니 3월엔 광장에도 환한 꽃소식이 들릴 것이다. 촛불 대신 축하의 불꽃이 봄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간절히 새봄을 기다린다.

(금호타이어 TV-CM 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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