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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휴즈-실비아 플라스 부부의 비극 속 조연으로 살다

입력
2016.02.06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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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올윈 휴즈

휴즈(Hughes)가 3남매. 왼쪽부터 장남 제럴드, 올윈, 막내 테드. 올윈은 테드를 위해 자기 삶을 기꺼이 희생했고, 동생의 명예에 걸림돌이 되는 거라면 어떤 일이든 상대가 누구든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의 거울 속에는 언제나, 끊임없이 부활하는 올케 실비아 플라스가 있었다. Ted Hughes Estate
휴즈(Hughes)가 3남매. 왼쪽부터 장남 제럴드, 올윈, 막내 테드. 올윈은 테드를 위해 자기 삶을 기꺼이 희생했고, 동생의 명예에 걸림돌이 되는 거라면 어떤 일이든 상대가 누구든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의 거울 속에는 언제나, 끊임없이 부활하는 올케 실비아 플라스가 있었다. Ted Hughes Estate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의 생애는 그의 문학보다 유명하다. 그의 삶이, 죽음이 그만큼 극적이었다. 빼어난 문재로 주목 받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30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후에야 그의 문학이 인정 받게 된 사연이 그러했다. 그가 숨진 1963년은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가 출간된 해였다.

남편은 당시 이미 영미 문단의 스타였던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였다. 플라스는 휴즈의 시를 미국 문단에 알려 첫 시집(‘빗속의 매’)이 나오게 했고, 휴즈는 단숨에 유명해졌다. 남편이 시작(詩作)과 강연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동안 플라스는 모교인 스미스 칼리지에서 강의하며 돈을 벌었고, 두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가사를 도맡았다. 잦은 다툼 끝에 둘은 62년 10월부터 별거했고, 석 달 뒤 플라스는 잠든 두 아이의 간식을 챙겨놓곤 부엌 문을 테이프로 밀봉한 채 오븐 가스밸브를 열었다. 그 시각 정부(情婦)가 아닌 또 다른 여인과 동침하고 있던 휴즈를 플라스의 팬들은, 페미니스트 진영은 ‘살인자’라 불렀다.

휴즈를 역성드는 이들은 물론 달리 말했다. 플라스는 결혼 전 두 차례(41년, 53년)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결혼 전후 그의 글쓰기도 지지부진했다. 기대와 야심이 컸던 만큼 좌절도 자괴도 컸다. 남편에 대한 부정(不貞)망상(물론 휴즈 입장이다)은 병적인 히스테리로 폭발하기 일쑤였다. 그 끝이 별거였다. 56년 결혼한 둘의 관계가 58년 무렵서부터 삐걱거렸으니 휴즈로서도 행복했을 리 없다. 플라스가 그렇게 떠난 뒤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훗날 영국의 계관시인이 됐고, 재혼한 아내 외에도 적잖은 여인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면서도, 그(와 주변)는 플라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못지않게, 어쩌면 더 불행하고 공허한 삶을 산 이는 휴즈의 누나이자 플라스의 시누이 올윈 휴즈(Olwyn Hughes)였다. 산 올케와 불화했던 그는 동생의 명예를 지키느라 죽은 올케와 싸우며 한 생을 보냈다. 둘의 저작권 대리인이 된 올윈은 플라스가 동생의 짐이 되지 않도록 인터뷰 등 대외 활동 일체를 통제ㆍ관리했고, 둘의 평전은 물론이고 누가 플라스의 글 일부를 인용하려 할 때도 문맥을 살핀 뒤에야 허락하곤 했다. 그는 사나운 검열자였고, 고집 센 협상가였다. 휴즈의‘케르베루스(Cerberus, 지옥 문을 지키는 개)’라 불리기도 했던 올윈 휴즈가 1월 3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결혼 직후 가족 모임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플라스와 올윈은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품는다. 올윈은 플라스가 “뭔가에 속박된 듯 꽁한”인상이었다고 했고, 플라스는 “(올윈이) 아주 미인이지만(…) 허영기 많고 이기적인 사람 같았다”고 일기에 썼다. 60년 크리스마스 가족모임에서 둘은 격하게 다퉜고, 그게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자넷 말콤이 쓴 실비아 플라스 평전 ‘침묵하는 여인 The Silent Woman’에는 그 다툼 직후 플라스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테드와 올윈의 미심쩍은, 근친상간을 의심케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썼다고 한다.(Telegraph, 2016.01.08) 동생을 향한 올윈의 애정이 그만큼 특별했다.

휴즈 남매는 영국 웨스트요크셔 미슬롬로이드에서 목수였던 윌리엄 휴즈와 에디스의 둘째와 셋째로 태어났다.(장남 제럴드는 2차대전 종전 직후 호주로 이민) 두 살 터울인 남매는 어려서부터 단짝처럼 지냈다. 올윈이 10살이던 38년 가족은 사우스요크셔의 탄광마을 멕스버러로 이사했고, 부모는 신문과 담배를 파는 잡화점을 열었다. 올윈은 사춘기의 우울을 독서로 풀곤 했다고 한다. 50년 퀸 메리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비서양성 과정을 이수, 52년 파리 주재 영국대사관에 취직했다. 그 취업은 ‘인디펜던트’가 “요크셔의 서민계층 여성으로선 다소 놀라운 일”이라고 썼을 만큼 성공적인 거였다. 그 무렵에도 그는 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익스피어와 초서의 책들을 추천하곤 했다. 플라스가 숨질 무렵 올윈은 영화ㆍ연극 대본 에이전시겸 출판사 마톤플레이(Martonplay)의 비서 겸 번역가였다. 그 해 말 올윈은 직장에 사표 내고 데본시 노스토턴(Devon NorthTawton) 휴즈의 집으로 이사해 조카 프리다(당시 3살)와 니콜러스(1살)를 키우며 살림을 챙겼고, 휴즈의 문학 에이전시 역할도 맡는다. 법적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유서도 없이 숨진 올케의 시집 ‘거상들(Collosus)’과 죽기 한 달 전 출간한 소설 ‘벨자(The Bell Jar)’, 그리고 유고 시 원고(‘에어리얼 Ariel’, 65년 출간)와 일기(82년 미국서 출간) 저작권도 당연히 테드의 몫이었고, 올윈의 일거리였다. 그 상황을 두고 플라스의 팬들과 페미니스트 진영은 휴즈 남매의 ‘파렴치’를 성토했다. 텔레그래프는 “(올윈과 플라스의 관계 등 제반 상황을 보건대) 휴즈는 플라스의 저작권을 올윈이 아닌 독립적인 제3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옳았다”고 썼다.

올윈은 동생에게 비우호적인(실은 중립적인) 비평가가 플라스의 평전을 쓰려 할 경우 취재에 불응했고, 작품 인용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선 천재적 문학 재능을 지닌 착하고 성실하고 잘 생긴 동생이 이상한 여자, 즉 재능보단 질투심이 더 많고 분열증과 우울증을 앓는 여자를 만나 고생만 하다가 욕까지 먹게 된 현실이 못마땅했고, 그 ‘진실’을 외면하는 페미니스트들과 평론가들에겐 화가 나 있었다. 그는 구미에 안 맞는 평전들을 싸잡아 ‘흡혈귀 전기(vampire biographies)’라고 불렀다. 올윈이 호평한 앤 스티븐슨(Anne Stevenson)의 플라스 평전 ‘씁쓸한 명성 Bitter Fame’(1989)에는 ‘극도의 악의(enormous hostility)’‘자기중심적 몽상(egotistic fantasizing)’ ‘정신적 맹목(psychological blindness)’같은 플라스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적지 않았다. 그 책을 두고 어떤 이는 “올윈과의 사실상의 공저”라고도 했고, 혹자는 “테드와 올윈의 (플라스에 대한) 쓰디쓴 복수극”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스티븐슨은 사실과 확정적 근거에 기초해 쓴 책이라고 항변하면서도 휴즈 남매의 간섭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휴즈의 파경 책임을 밝히는 부분은 남매의 요구로 삭제해야 했고, 책의 상당 부분은 다시 써야 했고, 플라스의 시와 일기를 허락 없이 인용할 수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Telegraph, 위 기사) BBC 프로덕션이 2003년 제작한, 귀네스 펠트로 주연 영화 ‘실비아’의 휴즈(대니얼 크레이그 분)가 알던 것보다 훨씬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로 묘사된 데도 저런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56년 파리에서의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 둘은 불 같은 연애 끝에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스미스대학 도서관 소피아스미스컬렉션.
56년 파리에서의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 둘은 불 같은 연애 끝에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스미스대학 도서관 소피아스미스컬렉션.
2003년 영화 '실비아'의 한 장면. 실비아 플라스 역은 귀네스 펠트로가, 테드 휴즈 역은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았다.
2003년 영화 '실비아'의 한 장면. 실비아 플라스 역은 귀네스 펠트로가, 테드 휴즈 역은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았다.

지난 해 출간된 조너슨 베이트(Jonathan Bate)의 평전 ‘테드 휴즈: 승인되지 않은 삶 Unauthorized Life’은, 올윈에 따르면 “쓰레기더미에 얹힌 또 한 권의 쓰레기”였다. 베이트는 지난 해 4월 자기 책이 휴즈 일가에 의해 어떻게 달라지게 됐는지 밝히는 장문의 글을 가디언에 실었다. 휴즈의 ‘문학적 삶(literary life)’을 쓰기로 하고 휴즈의 아내였던 저작권자 캐롤 휴즈(Carol Hughes)의 승인을 받은 일, 4년여에 걸쳐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해준 일, 막판에 휴즈의 사생활- 주로 여성 편력- 을 수록하는 문제 때문에 협력관계가 어그러진 사연…. 그는 결국 작품 인용구 대부분을 지워야 했다고 썼다. 앞서 98년 캐롤 휴즈는 남편의 자필 원고(일기 제외)등을 미국 에모리 대학에 팔았다. 영국국립도서관은 2010년 50만 파운드에 그 원고를 되 샀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했다. 베이트는 “하지만 저작권은 여전히 캐롤에게 있고, ‘10% 인용 허용’이라는 저작권법 조항은 너무 모호해서 저작권자가 소송을 걸면 판결로 적법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썼다. 베이트는 ‘문학적 삶’을 평전이라 여겼고, 캐롤과 올윈은 문학비평으로 이해했던 거였다.

베이트의 원고에는 파경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던 휴즈의 연인 아씨아 베빌(Assia Wewill, 1927~1969)은 물론 그 밖의 여러 가명ㆍ익명의 여인들이 등장했다. 올윈에게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왜곡’이거나 ‘허구’였다. 플라스가 숨질 당시 휴즈의 아이를 임신(유산)하고 있었고, 숨진 뒤 5년간 동거하며 딸을 낳은 베빌을 두고도 올윈은 “테드는 아씨아에게 가려고 집을 나간 게 아니었다. 그는 잠시 혼자 머물기 위해 런던의 친구 집에 있었을 뿐, 결코 아씨아와 함께 지내지 않았다”고 말했다.(가디언, 2013.1.18) 베빌 역시 69년 테드와의 불화 끝에 4살 딸을 수면제로 재운 뒤 나란히 누워 플라스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올윈은 70년대 말 잘생긴 아일랜드 출신 남자(Richard Thomas)와 연애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베이트에 따르면 그 남자는 알코올 중독자로 병원을 들락거린 난폭하고 변덕스러운 남자였지만 “테드를 쏙 빼닮은”미남이었다. 둘은 79년 6월 결혼한 뒤 1년도 안 돼 이혼했고, 이후 올윈은 독신으로 지냈다. 올윈은 친자식처럼 아끼던 조카 니콜라스가 2009년 알래스카에서 자살로 숨졌을 때에야 플라스가 앓던 우울증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수긍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도 그는 플라스를 두고 “끔찍한(nasty)” “트라우마 덩어리(whole trauma)”이고, “사악하고(vicious) 살짝 미친(a bit crazy)”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테드 휴즈는 98년 1월 플라스와의 만남과 결혼, 여행, 사별의 사연과 기억들을 88편의 시로 엮은 ‘생일편지 Birthday Letters’를 펴냈다. 그 시집의 해설서인 ‘실비아 플라스의 영혼을 찾아서’(박종성 저, 동인출판사)의 저자는 “그(휴즈)는 실비아 플라스의 영혼을 찾아서 35년 동안 내면으로의 긴 여행을 해온 셈이며 그 결과가 시집의 출간”이라고 썼다. 플라스가 숨진 뒤 35년 동안, 휴즈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험담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어떠한 말도 글도 세상에 내놓은 적 없었다. 충실한 대변자 올윈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 서문에 썼듯이 “망각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플라스의 일기 상당량을 누락시켰고, 59년 후반부터 자살 3일 전까지의 기록을 아예 폐기해 거센 비난을 샀는데, 그는 “아이들이 읽는 일이 없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시집을 내고 9개월 뒤 휴즈는 별세했고, 시집은 이듬해 휘트브레드 문학상을 탔다. 어쨌건 그는 그 시집으로 플라스를 향한 ‘변함 없는’ 애정과 경의를 표함으로써 자신을 영리하게 변호했다.

반면 독립적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부부의 비극 속 조연으로, 악역으로 살았던 올윈은 숨질 때까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자기 그림자와 싸우듯 그는 평생을 자신의 ‘입’과 싸웠고, 그걸 사랑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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