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과 병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오, 축하해’ ,‘그렇게 해서 어디 커리어 관리가 되겠어?’, ‘야~, 부럽다. 부러워’, ‘한창 일해야 할 때에… 안타깝군’, ‘정기자, 생각보다 용감해’, ‘그런데, 복직하면 책상은 확실히 남아 있는 거야?’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주변의 반응들을 뒤로 하고 육아휴직으로 들어앉은 지 두 달. 그간 찍어댄 사진들과 일정메모들을 참고하지 않고선 어떻게 지냈는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은 무척 빨리 지나갔다.
무척 달콤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싶을 정도였다. 업무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은 물론, 수많은 약속과 전화, 이메일에서 벗어난 나는 그 사이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직장 동료,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기왕지사, 또 내 생애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느냐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았지만 대략 2년치 여행을 두 달 만에 해치웠다. 무사히.
세상의 부러움을 받을 때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상 곳곳에서 편견과 맞닥뜨리면 어깨 힘이 빠졌다.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은 탓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같은 아파트 이웃 아저씨는 나의 육아휴직 사실을 알고선(다른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시기가 절묘하다!) 가벼운 인사만 하는 사이로 바뀌었고, 맨날 슬리퍼 반바지에 유모차 밀고 나다니는 ‘노는 남자’뒤로 아줌마 둘 이상이 지나면 귀가 가렵다. 모자를 거의 쓰지 않던 내가 집 나서면 항상 챙기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장모님은 이런 사위가 보기 그랬는지 여태 한번 올라오시지 않고 있고, ‘놀고 있는’ 나는 처가에 언제 전화를 했는지 기억해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육아휴직에 나서는 아빠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동물 취급 받는다. 아빠 보호자들을 숱하게 접했을,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 동네 소아과 간호사는 ‘육아휴직 아빠는 처음 본다!’며 소리칠 정도였고, 역시 적지 않은 원생 아빠들을 봤을 단지내 유치원 교사도 휘둥그런 눈으로 흘겨봤다. (내가 육아휴직 사실을 까발렸기에 나온 반응들인데, 일상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이라도 ‘주중 낮 시간 조우’가 반복되다 보면 이쪽을 향한 눈빛이 이상해진다. 그때 나는 나의 육아휴직 신분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아휴직은 대부분의 남성 직장인들에게 인사고과 불이익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곱지 않은 조직 내부의 시선을 한데 모아주는 촉매 역할을 하기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공무원 조직에서도 육아휴직 남성 수가 작년에 전년보다 줄었다고 한다.
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이 재조명받는 상황이고,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아빠의 보다 적극적인 육아를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남성 직장인들에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복직 후 기회가 된다면 아빠들의 이런 척박한 육아 환경을 지면을 통해 고발해보자, 하던 단순한 생각이 육아일기 연재로 일이 커지게 됐다. 아들과 함께 하는 동안 느끼게 될 감동과 기쁨, 고통, 분노 정도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 뿐,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어깨, 손목에 힘 빼고 덤덤히 쓰는 수밖에. 누군가 쏘아 붙인다. “얌마, 원래 일기는 그렇게 쓰는 거야. 한날 몰아서 쓰지만 않으면 돼.”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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