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주지 않으면 당신을 신고할 거예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gender)을 전환한 트랜스젠더 이김다래(25)씨는 성(sexual)을 팔고 있다. 3년 전 봄, 그는 평소처럼 자주 찾는 인터넷사이트에 '조건만남을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행여나 성 판매 사실을 신고할까 두려워 일단 남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에게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자신을 고3 수험생이라고 밝힌 남자는 다짜고짜 그를 성폭행했다. 물론 화대는 없었다.
그는 성폭행 사실을 신고하지 못했다. 성 매매 특별법은 성을 사거나 판 사람 모두에게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ㆍ구류나 과료에 처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성 폭행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는 성 매매로 처벌 받게 된다. 그는 "상대방이 '당신은 성 판매로 처벌 받겠지만 나는 미성년이라 훈방 조치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며 "신고하기 어려운 상황을 알고 일부러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성전환 수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성 매매에 나섰다. 성전환을 위해 여성 호르몬제를 맞다 보니 근력이 떨어져 예전처럼 택배 등 힘 쓰는 일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배우고 있다. 그는 "억울한 상황에서 보호해 주지 못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기 위해 공부한다"며 "성 판매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종사자들이 각종 폭력 및 부당한 상황에서 신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매매와 성폭력, 애매한 경계
성 판매 종사자들이 성 폭력을 당해도 성 판매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점을 노린 범죄는 매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성 매매 피해지원상담소 이룸에 따르면 지난해 성 판매 여성을 상대로 한 1,400건의 상담 가운데 111건이 성 매매를 둘러싼 각종 폭력피해였다. 주로 현장에 설치한 몰래카메라로 성 매매 과정을 촬영한 뒤 협박해 구타, 감금, 위협, 성 폭행 등을 벌이는 경우다.
속칭 텐카페, 유흥업소, 보도방 등 성을 거래하는 업종 형태에 따라 성 판매 여성들이 당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매매 관계에서 만난 남성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는 점은 모두 똑같다. 그렇다 보니 여성들이 성 매매 현장에서 구매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웃거나 술을 먹고 옷을 벗는 행위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최별 반 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는 "구매자는 성적 행위를 위한 시간 뿐 아니라 선을 넘는 것, 즉 성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상황까지 산다고 생각한다”며 “이때 구매자 비위를 맞추며 자기를 방어해야 하는 여성의 행동은 강제 행위처럼 보이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차별을 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 판매 여성들을 고용하는 업주들이 가부장처럼 군림하면서 여성들을 붙잡아 놓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 여성들은 업주들에게 성 폭력을 당해도 친족간 근친 강간 피해자들처럼 범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진상 피하기’는 임시방편일 뿐
살인과 같은 극단적 예를 들지 않아도 여성들이 겪는 위험 상황은 다양하다. 예컨대 티켓 다방 여종업원이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성 구매자에게 변태적이거나 가학적인 성행위를 요구 받아 거절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텐카페의 화장실처럼 ‘2차(성관계)’와 상관없는 장소에서 성 관계를 요구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될 때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성 판매 여성들은 이를 ‘진상 손님’이라고 표현한다.
이룸이 2012년 ‘성 매매 여성의 안전을 말할 수 있는가’자료에서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폭력 피해를 상담한 여성들은 스스로 보호를 위해 나름의 ‘안전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있다. 모텔 주변의 큰 건물을 꼭 기억해 두기, 모텔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무조건 1층에 방을 잡기, 방문을 절대 잠그지 않기, 집어 던질 수 있는 물건의 위치를 확인하기, 주변 사람에게 일정시간 이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당부하기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진상 고객'을 피하기 위한 임시 방편일 뿐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성 판매 여성을 불법 행위자로 규정한 법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안전을 말할 권리와 비범죄화
'성을 사고 파는 일이 범죄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성 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나 폭력, 성적 착취와 학대는 명백한 범죄다. 즉 성 매매의 불법 여부와 별개로 어떤 일을 하는 여성이든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위해 여성들 스스로 위험을 호소할 수 없게 발목을 잡는 ‘성 판매 여성 처벌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원은 “성 매매 합법화에 반대하지만 성 판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법적 처벌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는 윤락행위방지법이 적용되던 시기나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나 여전히 성 판매자에게 '더러운 여자' '몸 파는 여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며 "성 산업을 축소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성 판매 여성을 처벌하지 말고 알선자와 구매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노르딕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매자 처벌을 강화해 수요가 차단되면 굳이 성 판매자를 처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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