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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3000곳 늘어나… 이 많은 출판사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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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3000곳 늘어나… 이 많은 출판사는 어디서 왔나

입력
2018.01.10 13:4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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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으로 출판계 구조조정

자리 잃은 인력이 차린 곳 많아

대부분 ‘1인 출판사’ 형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약 9,000곳의 출판사가 새로 문을 열었다. 출판 불황 장기화로 설 자리를 잃은 출판인들이 조직을 나와 소규모 출판사를 차리면서 1인 출판사 열풍이 불었다는 분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약 9,000곳의 출판사가 새로 문을 열었다. 출판 불황 장기화로 설 자리를 잃은 출판인들이 조직을 나와 소규모 출판사를 차리면서 1인 출판사 열풍이 불었다는 분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문화재 보존과학을 공부하는 김서울씨가 쓴 ‘유물즈’는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애정을 기록한 책이다. 유물에 영어 복수형 어미 ‘S’를 붙여 만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교과서적 감상을 버리고 유물에 순수하고 동시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왕궁의 화려한 장식품에서 ‘장인 서너 명은 갈아 넣었음직한’ 권세를 상상하고 금으로 세공한 신발과 자신의 크록스를 비교하는 식이다. 독립출판으로 나왔던 이 책은 지난해 11월 1인 출판사 코난북스에 의해 한정판으로 1,000부가 재출간돼 전량 판매됐다.

최근 출판계의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작음’이다. 책 자체도 작고 얇아졌지만 다루는 내용도 소수 독자의 마니아적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들의 콘텐츠를 주목하고 책으로 묶어 시장에 내놓는 이들은 소규모 혹은 1인 출판사들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17 출판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4만4,148개였던 출판사 수는 2016년 5만3,574개로 늘었다. 3년 간 약 9,000곳이 늘었으니 매해 3,000여 곳의 출판사가 새로 문을 연 셈이다. 이중 연간 1~5종의 책을 발행하는 소규모 출판사는 3,730개에서 4,938개로 증가, 전체 출판사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4%에서 9.2%로 늘었다. 이 작은 출판사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출판계에 따르면 “대부분 기존 출판 시스템에 종사하던 이들”이다. 불황이 심해지면서 조직에서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나와서 출판사를 차린다는 것.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편집자ㆍ마케터들로, 최근 출판계에 부는 ‘1인 출판사 열풍’의 주축들이기도 하다.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는 “작은 출판사들로 인해 독특한 책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출판사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늘어난다는 건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라며 “소신을 가지고 조직을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밀려나 ‘울며 겨자먹기’로 출판사를 차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정현 마티출판사 편집장도 출판사 증가세에 대해 “더 이상 대형 출판사에서 나이든 편집자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반증”이라며 “50, 60대 편집자가 자리를 지키려면 출판사 규모가 커져야 하는데 계속 제자리걸음이니 연차가 높은 순부터 정리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출판인의 짧은 수명은 고질적인 문제지만 최근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데는 출판 불황장기화, 2014년 말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 등 여러 원인이 꼽힌다. 천정한 정한책방 대표는 “구간 할인으로 만들어온 매출이 사라지면서 당기순이익이 급락했다”며 “2015년경 전체 출판사의 매출이 떨어지면서 내부 인원감축으로 손실을 줄이려는 곳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수 추이 (2012~2016)

※자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

소수 독자의 특정 관심사 주력

빛나는 기획력으로 대박 나기도

독립한 출판인 상당수가 경력자들이다 보니 빛나는 기획력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사례도 있었다. 2016년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4만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됐다. 20년 간 교정ㆍ교열사로 일한 김정선씨의 문장 다듬는 법이다. 천정한 대표는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던 일”이라며 “독립서점, 독립출판 등 1인 출판사들의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더욱 특화된 출판사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이책 전문, 컬러링책 전문 등 관심사를 하나로 좁힌 출판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유물즈’ 같은 책이 독립서점이 아닌 일반 출판시장으로 나온 것도 최근의 바뀐 환경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아직까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출판관계자는 “창업한 지 1년도 안돼 문 닫는 출판사가 많다”며 “적자가 나도 오직 경영을 위해 쳇바퀴 돌리듯 신간을 내는 곳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위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신간 발행량은 7만5,727종으로 2013년에 비해 23% 늘었지만, 전체 출판사 매출액은 0.99% 성장해 사실상 정체상태를 보였다.

특히 소규모 출판사들이 겪는 낮은 도서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납품하는 책 값의 정가 대비 비율) 문제는 1인 출판사 증가 추세에서 다시 대두되고 있다. 다른 출판 관계자는 “처음엔 60%는 받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가능성이라도 생기는데, 요즘 유통사 중엔 55%를 제시하는 곳도 있다”며 “수익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라는 말과 다름 없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힘이 없어 억지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조성웅 대표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전무한 상태”라며 “제도의 뒷받침 없이 출판사의 숫자만 계속 늘어난다면 유통사와 출판사 간의 불공평한 관계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간 신간도서 발행량(2012~2016)

※자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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