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은 터트려선 안 된다.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거대한 배의 선수상에 귀한 샴페인을 깨는 대항해시대의 모습, 또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명예가 약속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선수에게 고가의 샴페인을 뿌리는 모습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모두 과장된 제스처였거나, 샴페인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중대한 축원 또는 그만큼 큰 경사의 의미에 합당할 때뿐이었다. 우린 고작 장삼이사로서 또 한 해를 보내고 있을 뿐이니 별 일 없이 터트릴 거라면 제과점에서 파는 초저가 ‘뽀글이’로도 똑 같은 연출이 가능하며, 기분은 충분히 난다.
감히 코르크 마개를 열기 전에 충분히 식혀 금빛 액체 속 탄산이 용틀임하는 온도보다 낮은 온도에 진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샴페인 마시기엔 낮으면 4℃, 높으면 10℃가 적당하다. 비싸고 잘 만든 샴페인일수록 10℃ 가까운 온도에서 향이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 적당하지만, 4℃ 정도로 차가운 것도 탄산의 청량함을 즐기기에 딱 좋다. 갓 코르크를 연 샴페인 병에서 나와야 할 것은 오로지 그토록 서늘한 한기뿐이다.
두터운 코르크 마개는 ‘퐁’ 하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레 연다. 손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코르크 마개가 조금씩 들려 뽑히게 하는 것이다. 손아귀 사이로 찬 바람이 빠져 나오는 것이 미세하게 느껴진다면 알맞은 신중함이다. 샴페인 병을 열었을 때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는 안 된다. 흐르는 술이 아깝다.
잔은 얇을수록 좋다. 거품은 병이 아니라 글래스에서 나야 한다. 투명하게 잘 닦은 샴페인 글래스에 황금빛 액체를 부으면 영광스러운 올 한 해가 가는 것처럼 부드러운 거품이 솟아 올랐다 이내 사그라든다. 샴페인은 소주와 달라, 사랑하는 만큼 꽉 채워 따라주는 술이 아니다. 반 정도 채워주고, 차갑게 마시고, 얼음물에 채워뒀다가 또 차갑게 따라주는 사이에 사랑이 샘솟는 법이다.
기포는 작을수록 좋다. 미세한 구슬 같이 작은 기포가 끊기지 않고 잔을 비울 때까지 고요하게, 그러나 끝없이 피어오른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내자면 샴페인 자체의 힘도 필요하지만 샴페인 잔도 기포를 돕는다. 고급 샴페인잔 바닥에는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 있어 기포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도록 돕는다.
글래스 모양은 물론 늘씬한, 익히 아는 형태의 플루트 글래스가 대세다. 샴페인의 화려함이 가장 돋보이는 형태다. 그러나 꼭 플루트 글래스에만 샴페인이 맞는다는 법도 없다. 좋은 샴페인의 향은 다채롭다. 향을 가두는 것은 글래스의 형태다. 그래서 요즘은 샴페인 와인 글래스를 따로 쓰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 글래스와 비슷한 모양이다. 글래스의 아랫 부분이 물주머니처럼 불룩하고 입에 닿는 림 부분은 좁은 구조다. 물리적으로 샴페인이 가진 향을 머금고 있다가 코로 바로 불어 넣어 준다. 비싼 향을 흠뻑 즐길 수 있다.
빈티지 샴페인 글래스로 통칭되는 글래스는 옛날 영화에서 보던 것 그대로다. 이 글래스는 플루트 글래스의 허리춤이 중년 남성의 뱃살처럼 불룩하게 나와 있는 형태다. 옛날 영화에 흔하게 나온 샴페인 글래스는 ‘쿠프(Coupe)’ 라는 형태다. 요즘도 영화에서 화려한 파티 장면을 연출할 때 즐겨 쓰는 소품이기도 하다. 흥 나는 영화 ‘라라랜드’에서도,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아 리메이크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파티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이 쿠프 글래스에 샴페인을 마셨다. 활짝 열린 잔의 형태 덕분에 탄산이 금세 날아가 빨리 마셔야 하니, 흥청망청 파티에는 되레 더 제격인 글래스다.
샴페인 지역에서 고유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샴페인들. 왼쪽부터 떼땅져 녹턴, 샴페인 트리보 프리미에 크뤼, 샹파뉴 도츠 브륏 클라식, 필립 고네 ‘르하 솔레이’ 블랑 드 블랑 그랑크뤼 샹파뉴, 필리조 앤 필스 누메로 3, 루이 로드레 브뤼 프리미에, 데위 블랑 드 블랑 브뤼 2010, 레클레르 브리엉, 밀레짐 2009, 아그라파르 샹파뉴 브리, 뵈브 클리코 옐로우 레이블.
샴페인이 아니어도 좋다. 발포 와인을 통칭하는 샴페인은 어디까지나 지명이다. 프랑스 북부, 와인의 북방 한계선 부근 지역인 샹파뉴(Champagne)를 영어식으로 읽어 ‘샴페인’이 됐다. 원칙적으로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특유의 방식으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른다. 라벨에 ‘샹파뉴 CHAMPAGNE’라고 눈에 띄게 쓰여 있어 구분하기 쉽다. 보통 영어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는 발포 와인의 일종이 샴페인인 셈인데,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난 스파클링 와인은 ‘뱅 무셰(Vin Mousseux)’ 또는 ‘크레망(Cremant)’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탄산을 틀어 막는 병의 형태는 샴페인이나 여타 스파클링 와인이나 모두 같다. 왼쪽부터 가우디 까바 브륏, 프레시넷 꼬든 네그로 브리, 로저구라트 그랑 퀴베는 스페인 카바, 붉은 라벨의 스테파노 루비아나 브뤼 리저브는 호주 스파클링 와인이다. 오른쪽 네 병은 모두 로제로, 빌까르 살몽 브륏 로제와 브루노 파이야르 로제 프리미에르 퀴베, 찰스 하이직 로제 리저브이 로제 샴페인이며,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샹동 NV 브룻 로제는 호주 로제 스파클링 와인이다.
‘카바(Cava)’와 ‘스푸만테(Spumante)’ 역시 샴페인 못지 않은 대표성을 띄는 스파클링 와인의 별칭이다. 각각 스페인,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중엔 ‘프로세코(Prosecco)’도 있다. 인접한 나라, 독일에도 물론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젝트(Sekt)’라고 부른다.
샴페인 또는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 황금빛이 아닌 ‘분홍분홍’한 색을 띄는 것들도 있다. 양조 과정 중 포도 껍질을 접촉시키거나 레드 와인을 첨가해 색을 내고 색다른 향을 자아낸다. ‘로제 ROSE’라는 말이 큼직하게 적혀 있어 이 역시 구분하기 어렵지 않다.
샴페인이어도 좋고, 아무 스파클링 와인이어도 좋다. 설사 아무 뽀글이라 한들 뭐 어떤가. 상큼하면서도 싱그럽고, 쌉싸래하다가도 달콤한 여운마저 조금 갖고 있는 스파클링 와인은 한 해를 보내는 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곧 2018년, 빛나는 연말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전문가 13인이 꼽은 ‘인생 샴페인’
소믈리에, 와인 칼럼니스트, 소비자와 가장 밀접한 판매점 점장 등 전문가들에게 이제껏 마셔본 스파클링 와인 중 연말에 합리적으로, 그러나 완성도 높게 즐길 만한 스파클링 와인을 추천 받았다. 아무래도 스파클링 와인 하면 샴페인, 샴페인 하면 프랑스의 전유물이다 보니 추천 리스트에 프랑스산 샴페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기사에 표기된 가격은 어디까지나 ‘권장소비자가’로, 판매처에 따라 훨씬 저렴하게도 구매할 수 있다.
■스페인
○프레시넷 꼬든 네그로 브리(Freixenet, Cordon Negro Brut)
3만2,000원 | 김민주(‘한남리커’ 치프 소믈리에)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옅은 옐로우 컬러로, 레몬향과 함께 풋사과, 배, 복숭아, 파인애플, 멜론 등의 풍부한 과일 향이 톡톡 튀는 탄산과 함께 산뜻하게 펼쳐진다. 파티에 어울릴 법한 핑거 푸드, 딸기 크림 프리쉐(fraiche), 과일 샐러드, 석류 샐러드 등과 잘 맞는다.
■잉글랜드
○베리브라더스 잉글리쉬 스파클링(The Wine Merchant’s Range English Sparkling Wine 2010)
4만9,900원 | 방문송(‘와인비전’ 원장)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영국 스파클링 와인. 가격에 비해 훌륭한 품질을 갖고 있다. 가리비, 게와 바닷가재 등으로 풍성한 맛을 낸 해물 리조토는 맛과 향이 진하고 달다. 효모 자가분해향이 선명하고 풍부한 질감이 있는 이 와인과 함께하면 요리와 와인의 완벽한 일치감을 느낄 수 있다.
■호주
○스테파노 루비아나, 브뤼 리저브(Stefano Lubiana, Brut Reserve)
7만원 | 양윤주(하프패스트텐 오너 소믈리에)
고급스러우면서도 스타일리시한 호주 태즈매니아섬의 스파클링 와인. 신대륙 국가에서 만들었지만 샴페인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내 고급스러운 샴페인 특유의 풍미를 담아낸 흔치 않은 스파클링으로 가성비가 매우 좋다.
■프랑스
○뵈브 클리코 옐로우 레이블(Veuve Clicquot Yellow Label)
8만8,900원 | 한욱태(‘권숙수’ 소믈리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샴페인 중 하나로 눈에 띄는 노란색 레이블이 매력적이며, 신선한 과일과 고소한 빵의 기분 좋은 풍미를 갖고 있다. 음식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튀김류, 또는 전이나 족발 같은 기름진 요리와도 잘 맞는다. 심지어 햄버거, 감자튀김과 마셔도 좋다.
○샴페인 트리보 프리미에 크뤼(Champagne Tribaut Premier Cru)
11만5,000원 | 전현희(‘와인타임’ 송파점 점장)
샹파뉴 지역 프리미에 크뤼 등급 밭의 피노누아를 주 베이스로 하여 만든 샴페인.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풀바디를 가져 가벼운 식전주로는 물론 파스타, 버섯 크림 리소토, 소스가 강하지 않은 스테이크 등의 메인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아그라파르 샹파뉴 브리(Agrapart, Champagne Brut "7 crus" NV)
12만원 | 천승범(‘스쿠로’ 오너 소믈리에)
직접 농사 지은 샤르도네를 주로 사용한 샴페인이다. 샤르도네 특유의 섬세한 터치와 향긋한 꽃향기, 그리고 부드러운 과일맛을 가지고 있어 식전주로도 훌륭하다. 화이트 발사믹 드레싱을 곁들인 생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그라탕, 올리브오일에 구운 팬 프라이 금태와 조합이 좋다.
○빌까르 살몽 브륏 로제(Billecart-Salmon Brut Rose)
13만5,000원 | 한보라(‘와인앤모어’ 한남점 점장)
양조과정에서 피노 누아 와인을 일부 넣어 완벽한 로제 색과 레드 와인 못지 않은 무게감을 갖고 있다. 딸기 향과 레몬 제스트처럼 상큼한 산도, 섬세한 기포를 지녔다. 캐비어, 연어, 송아지 카르파치오와 함께 하면 파티 분위기를 최고로 살릴 수 있다.
○루이 로드레 브뤼 프리미에
13만5,000원 | 박수진(WSA와인아카데미’ 원장)
섬세한 버블이 끝없이 지속되며 눈과 입을 황홀하게 만든다. 우아한 산도와 부드러운 풍미가 매력적이다. 레몬을 곁들인 석화, 회, 초밥 등 섬세하고 신선한 음식과 매칭하기를 추천한다.
○샹파뉴 도츠 브륏 클라식 Champagne Deutz Brut Classic
16만9,000원 | 안중민(SPC그룹 소믈리에)
시트러스 계열의 산뜻한 산도와 섬세한 기포가 인상적인, 시원하며 깔끔한 맛을 가진 샴페인으로 캐비어, 참치나 바닷가재 요리와 매칭하면 가장 잘 어울린다.
○떼땅져 녹턴(Taittinger Nocturne)
23만1,000원 | 김윤석(와인 칼럼니스트)
크리스마스 이브와 함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샴페인이 있을까. 떼땅져 녹턴은 4년 이상의 숙성에서 나온 복합적 풍미가 산뜻한 단맛과 어우러져 편안함을 선사한다. 진저 브레드 같은 크리스마스 쿠키나 다양한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필립 고네 ‘르하 솔레이’ 블랑 드 블랑 그랑크뤼 샹파뉴(Philippe Gonet ‘Roy Soleil’ Blanc de Blancs - Grand Cru Champagne)
25만원 | 김선희(‘락희옥’ 대표)
기포가 강렬하다. 풍부한 과일향 여운과 오크통 숙성에서 나온 구운 아몬드향과 미네랄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레몬처럼 톡 쏘는 마무리는 연말 기분을 업시키는 샴페인 본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농후한 석화부터 보쌈이나 육전 같은 육류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브루노 파이야르 로제 프리미에르 퀴베(Bruno Paillard Rose Premiere Cuvee)
27만5,000원 | 김상미(와인 칼럼니스트)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의 장점만 쏙쏙 골라 만든 것 같은 로제 샴페인이다. 작은 기포가 입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체리, 딸기, 자몽 등 잘 익은 과일향이 은은한 미네랄향, 상큼한 산도와 어우러진다. 우아함과 섬세함의 진수다. 육회, 비프 타르타르와 환상의 궁합.
○찰스 하이직 로제 리저브(Charles Heidsieck Rose Reserve)
28만2,000원 | 유영진(비스타 워커힐 서울 ‘델 비노’ 소믈리에)
전 세계 와인 전문가가 선정한 최고의 와인. 풍부한 아로마와 섬세한 산미의 균형은 이루 말할 데 없이 매력적이며, 완성도 높은 샴페인으로 정평 나있다. 소스 없이 터프하게 구운 양갈비나 소 등심 스테이크와도 잘 어울리며, 만체고 또는 파르미지아노 치즈와도 궁합이 좋다.
이해림 객원기자(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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