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ㆍ중일관계 개선에 고립만 심화
실리 추구 외교전서 전략 변화 목소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이 시작된 26일(현지시간)부터 외교부 담당 부서는 비상대기 상황이다. 미일 군사동맹의 새 틀을 짜고 ‘보통국가’ 일본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아베 총리의 구상과 행보가 한국 외교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중국의 전격적인 중일정상회담 개최 이후 한국의 고립 위기, 한일을 향한 미국의 이중 메시지 구사, 일본의 과거사 반성 외면 버티기 등 삼각파도 속에 한국 외교가 속수무책 표류 중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28일과 29일 워싱턴에서 열릴 미일정상회담과 의회 합동연설 등을 계기로 과거사 사죄 메시지가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부는 이미 “(아베 총리 연설에서) 일본 역대 내각의 (과거사 반성 입장을 담은) 역사 인식을 변함 없이 계승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노광일 대변인)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각도의 여론전도 펼쳐왔다.
미국 쪽에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없지 않았다. 에반 메데이로스 미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는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일본 측은) 과거사를 정직하고 건설적이며 솔직한 방식으로 다루어 치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일본에 촉구했다. 민주 공화당 의원 25명 연명 서한, 미국 학계 유관단체의 아베 총리 사과 요구 등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일본의 행보에 한국은 안중에 없는 형국이다. 아베 총리는 26일 방미 길에 오르며 “일본이 앞으로 미국과 함께 무엇을 할지, 어떤 세계를 만들지 비전을 만들 것”이라고 했지 과거사 언급은 없었다. 22일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회의에서도 ‘깊은 반성’ 정도의 표현으로 넘어갔다.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의 미국 일정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 이상의 언급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전했다.
게다가 중국과 미국도 우리 마음 같지 않다. 중일 역사ㆍ영토갈등 와중에도 반둥회의 현장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아베 총리와 전격적으로 중일정상회담을 여는 식으로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미국도 “일본은 아시아정책의 중심”(메데이로스 선임보좌관), “미일동맹은 아태지역 동맹, 우방네트워크의 중앙”(벤 로즈 미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을 외치며 ‘아시아 재균형정책’에 맞춰 일본의 군사 역할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만 자꾸 동북아 외교전에서 소외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의 실리 추구 외교전에서 살아 남으려면 우리의 외교 전략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음부터 역사 문제와 다른 외교 현안을 섞어가며 대응하고, 애초 4월 방미 때 일본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려다 8월 광복절로 미루는 등 목표가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일본을 다룰 때 민족주의 인식에 편승하는 경향이 너무 많고 국내정치 차원에서 활용하려는 모습도 엿보이는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일관계 신밀월시대, 중일관계 개선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자꾸 타이밍을 놓치는 뒷북외교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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