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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與, 오기 부리는 野… 정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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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與, 오기 부리는 野… 정치가 없다

입력
2016.09.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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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 유례없는 단식 투쟁

배경엔 대통령의 의회 '무한 불신'

野는 물밑협상 무산에 불만 드러내

반쪽 국감… 민심 안중에도 없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처리에 강력 반발하는 새누리당이 26일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관철을 위한 비상 대책위를 가동, 단식과 릴레이 1인 시위 등 동시다발적 항의에 돌입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국회 당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왼쪽사진),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대근기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처리에 강력 반발하는 새누리당이 26일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관철을 위한 비상 대책위를 가동, 단식과 릴레이 1인 시위 등 동시다발적 항의에 돌입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국회 당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왼쪽사진),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대근기자

정치권의 치킨게임이 점입가경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이 상대를 향해 일방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사상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전면 거부(보이콧)하더니, 당 대표가 단식투쟁까지 시작했다. 야3당은 공조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 거야(巨野)의 위력을 증명했지만, 그 배경엔 정치적 거래를 거부당한 불만이 있었다. 대통령은 의회를 향해 또다시 존중보다는 무한불신의 태도를 보였다. 정부를 감시하는 의정활동의 집약이랄 수 있는 20대 국회 첫 국감은 야당 만의 ‘반쪽짜리’로 시작됐다.

‘김재수 장관 해임안 가결’로 시작된 여야 대치 4일째인 26일 오전만 해도 정치권에서는 얼마 간의 냉각기를 거친 뒤 사태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야당에 국감을 2, 3일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정 의장이 해임안 처리강행에 대한 유감 표명 등으로 새누리당을 설득하려는 것 아니냐는 낙관이었다.

하지만 정오를 30분 앞두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돌연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권당 수장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목숨을 바칠 각오”라고 다짐까지 했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극한 투쟁에 새누리당의 판단 잣대가 과연 ‘국민’이 맞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오로지 대통령을 호위하려 여당이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하고 있다”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는 대표가 단식에 나선 일이 있긴 했다. 2003년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면서다. 그 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 대표를 찾아 “굶으면 죽는 건 확실하다”며 만류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정치 원로도 없다.

이 같은 ‘투쟁 여당’의 배후엔 김재수 장관 해임안을 자신의 권력을 향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박근혜 대통령의 노기가 버티고 있다. 일고의 여지 없이 곧장 해임안을 거부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선 의회를 향한 불신이 배어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대통령이 임기 후반 여소야대 정국에서 밀리면 주도권을 놓친다는 경직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내 길 만을 가겠다는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야당을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인정하기 보다 대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은 야당대로 해임안을 발의한 이유가 있을 테니, 청와대가 유예기간을 두고 물밑에서 야권과 긴밀히 조율한 뒤 결정했다면 ‘감정 싸움’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역시 여소야대 정국의 힘을 ‘오기 정치’에 쓴 것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에 세월호특별조사위 활동기간 연장이나 ‘어버이연합 청문회’ 중 하나라도 수용한다면 해임안 발의를 접겠다는 뜻을 전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더민주에선 “워낙 여당이 불통인 탓에 꺼낸 고육지책”이라는 항변도 나오지만, 이는 여당 내 온건주의자들의 반발까지 불렀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가 각자의 신념과 가치를 담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법안 패키지 협상은 의회 내에서 수용 가능한 절충의 방식이지만, 인격 말살에 비유되는 해임안은 협상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중도ㆍ온건 성향의 여당 의원들까지 대야 투쟁에 합류하면서, 타협의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결국 이번 사태는 민심 대신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며 대표 단식이란 초유의 치킨게임에 나선 새누리당의 오판,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나 만이 옳다는 대통령의 오만, 협상용 해임안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다수의 힘을 과시한 거야의 오기가 만든 합작품이다. 그 속에서 합의와 타협의 ‘진짜 정치’는 실종됐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치를 전투도 아닌 싸움 하듯 하고 있다”며 “책임의식 없이 권력만 보는 하급 정치”라고 일갈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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