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 바꾼 적 없는 원칙ㆍ소신의 정치인
‘문재인의 대리인’ 이미지 불식이 관건
정권 교체하려면 박원순 손학규 포용해야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상징하듯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태껏 족쇄가 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동참도 자신을 정계로 이끈 DJ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당초 탄핵에 반대했던 그는 이후 “내 일생 최대의 실수”라며 삼보일배로 속죄했다. 그때 무릎이 나빠져 지금도 높은 구두를 신지 못한다고 한다.
5선 의원인 추미애는 정계 입문 이후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 없다. “호적을 함부로 바꿔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선거 때마다 당을 갈아타는 철새와는 거리가 멀다. 야권 정치인 대부분이 돌고 돌아 더민주로 왔지만 추미애는 줄곧 민주당을 지켰다. 이합집산과 염량세태(炎凉世態)가 판치는 정치 풍토에서 이는 큰 강점이자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칙과 신뢰, 강하고 목표 지향적인 리더십이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원칙과 소신을 내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과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불투명한 정국 상황과 야권 지형으로 볼 때 지금 제1야당 대표에게 더 필요한 리더십은 포용력과 소통, 균형 감각이다.
추미애는 친문(문재인) 핵심 세력으로 인식돼 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됐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도 문 전 대표를 도왔고, 안철수 전 대표가 당을 뛰쳐나갈 때도 굳건히 문재인 편에 섰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친문 주류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다. 그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재인을 향해 “굉장히 강한 펀치를 맞고도 1위를 유지하는 대선 후보”라고 치켜 세우고 “당 대표는 대선 후보를 흔드는 사람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문재인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더민주가 ‘문재인 당’ 이미지로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뜩이나 지도부가 주류 일색이 돼 ‘친문 잔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조직이고 힘의 쏠림 현상이 지나치면 역풍이 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정당이 과연 정권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더민주에는 박원순, 손학규, 안희정, 김부겸 같은 쟁쟁한 인물이 즐비하다.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당이 친문 체제로 고착화되면 이들 예비주자가 들러리를 서려 할 리가 만무하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제3지대론’이니 ‘플랫폼 정당론’이 거론되는 게 이런 우려를 보여준다. 친문 패권주의가 노골화될수록 경쟁자들의 원심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추미애 대표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 대표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형성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통령의 방패막이 노릇만 하고 있다. 국정의 주요 축인 집권당의 대표가 몸을 사리며 국정의 난맥상을 방치하고 있으니 보수층마저 외면하는 게 당연하다. 추 대표도 ‘문재인 지킴이’에 머무르면 당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더민주 새 지도체제의 궁극적 과제는 정권 교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경쟁자들을 포용하고 외연을 확장해 가야 한다. 다양한 후보가 경쟁 구도를 통해 지지자들이 열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공정하고 역동적인 틀을 만들어야 한다.
더민주 지도부가 전념해야 할 것은 새로운 사회의 비전과 대안 제시다. 근시안적 정치 공학과 선거 마케팅이 아닌 수권 정당으로서의 가치와 목표, 정책과 리더십을 갖추는 일이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대응한 사회ㆍ경제적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동북아 신냉전 질서를 헤쳐 나갈 전략은 무엇인지, 사회 불평등 구조와 민주주의 위기를 해소할 방안은 어떤 게 있는지를 내놔야 한다.
추미애는 1997년 대선에서 야권 불모지인 대구에서 DJ 지지를 호소하며 강력한 인상을 남겨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 걸맞게 더민주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을지가 앞으로 추 대표 어깨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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