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국감을 보니 대선 싹수가 노랗다

입력
2016.10.12 20:00
0 0

국가 위기 벼랑 몰린 박근혜정부

국회는 나 몰라라 힘겨루기만 거듭

대선 함몰 정치, 나라 망칠까 걱정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은 끝내 진창에 빠졌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정치 현안들은 스러진 채, 그놈의 성(性) 문제에 얽매여 서로 오물만 뿌려대다 말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암울했다”고 했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역사상 가장 추잡한 TV토론”이라고 평했다. 미국 정치의 수준, 그리고 대중 민주주의의 퇴보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위 해법이라는 믿음이나, 현실정치에 대한 신뢰 하락은 미국에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2014년 스탠퍼드대학 졸업 축사에서 ‘대부분 미국인들은 지금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는 낙관보다 아이들의 삶이 자신보다 못할 것이라는 비관에 젖어 있다’고 했다. 혁신(innovation)의 가치를 강조하는 중에 나온 얘기였지만, 미국인들은 이미 정치가 양극화나 경제적 기회의 축소 같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 현실을 암시했다. 국민의 눈에 비친 ‘정치의 타락’이 부른 현상이다.

정치에 대한 미국의 환멸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건 우리 상황도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 진행 상황이나, 벌써부터 ‘잠룡’ 얘기로 들떠 돌아가는 정치판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다.

지금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다. 북한 문제도 걱정이지만, 당장 국민에게 절박한 건 도무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 경제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에게도 ‘3저 호황’이라는 행운이 따랐지만, 민족적 소명을 내세운 박근혜에겐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글로벌 경기는 줄곧 바닥이었고, 수출 부진 속에 국내 핵심산업은 잇달아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하지만 ‘수첩인사’의 한계에 갇힌 박 대통령은 시련을 극복할 만한 철학과 실력, 경험을 갖춘 노련한 경제사령탑을 기용하는 데 잇달아 실패해 일을 더 크게 그르쳤다.

그 결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임기 중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박 대통령 공약은 이미 거짓말이 됐다. 올해와 내년도엔 기껏해야 2%대 성장이고, 연봉 3,000만원짜리 일자리를 매년 9만3,00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연간 2조8,000억원을 고용장려금 사업 예산에 쏟아 붓고도 실업률은 연일 역대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내수 살린다며 ‘빚 내서 집 사라’에 재개발ㆍ분양권 투기까지 조장한 부동산 정책은 최악의 정책 실패로 남을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준비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조선 해운 철강 등 기존 핵심산업의 재편을 위한 구조조정은 결단 없이 미루기만 한 끝에 벼랑 끝에 몰려 진땀만 흘리는 양상이다. 신성장동력 역시 미래창조부를 신설하며 요란만 떨었지 ‘9대 전략산업’ 중 어느 하나도 국제적 경쟁력을 자랑할 만한 수준으로 키워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정권 실패가 아니라, 장기적 국가 실패까지 우려할 상황이다.

하지만 대정부 질문이든 국감이든, 20대 첫 정기국회에서 여야는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따지고 국가 실패를 막기 위한 시도를 외면했다. 물론 대부분의 책임이 청와대와 여당에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바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미르ㆍK스포츠 재단 문제 등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불통’이 새누리당 대표의 코미디 같은 단식농성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회의 판을 흐렸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시비와 청와대 흠집 내기에 골몰해 더 중요한 국정현안의 담론화에 실패한 거대 야당의 잘못도 무능한 여당 못지않다.

요즘 몇몇 ‘잠룡’들은 저마다 ‘000경제’ ‘00경제론’ 등을 내세우며 자기 선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20대 국회 출범 100일 동안 단 한 건의 민생ㆍ경제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한 정치현실에서 뜬구름 잡는 경제론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벌써부터 대권 싸움에 골몰한 정치판을 보면 우리나라 차기 대선도 결국 미국처럼 정치 환멸만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