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깊이 사과 드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검찰에 출두한 20일 롯데가 밝힌 공식 입장이다. 롯데그룹은 “고객 여러분과 협력사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국내외 18만명이 종사하는 롯데의 미래 역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임직원이 힘을 모으겠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는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신 회장은 평소보다 20분 가량 빠른 8시10분 본사 26층 집무실로 출근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은 잠을 설친 듯 충혈된 눈에 까칠한 얼굴로 언론 보도 브리핑과 아침 보고 등을 받고 8시55분 검찰로 향했다”고 전했다. 롯데 정책본부의 한 직원은 “회장님이 서초동으로 가신 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관련 뉴스만 계속 검색했다”며 “가급적 검찰 수사가 빨리 마무리돼 회사가 정상화되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신 회장이 소환되며 제계 서열 5위 그룹인 롯데는 수뇌부 경영 공백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쇼핑과 백화점, 마트, 케미칼, 제과, 물산 등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대표들은 이미 구속이 됐거나 출국 금지 상태여서 정상적 경영 활동이 어려운 상태다. 그룹 경영을 실무적으로 총괄해 온 이인원 부회장의 빈자리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신 회장마저 구속될 경우 롯데그룹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야심 차게 추진했던 호텔롯데 상장이나 거의 마무리됐던 미국 석유화학 기업인 액시올의 3조원대 인수 등을 포함해 올해 예정됐던 대형 사업들이 이미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롯데의 지배구조 특성상 그룹 경영권 분쟁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한국롯데의 지주사격인 호텔롯데의 최대 지분(19.04%)은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이 공동 대표로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속이 되면 대표이사직에서도 사퇴하는 일본 기업의 문화를 감안할 때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입지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물론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벌어진 사안이고 일본롯데와는 무관하다”며 “만약 신 회장이 구속된다 하더라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반드시 물러나야 하는 강제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본 롯데홀딩스 공동대표로 있는 쓰쿠다 사장 역시 신 회장측 인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 회장 중심의 한ㆍ일롯데의 경영권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은 이번 사건을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문제를 청산하고 지적된 사항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신뢰받고 투명한 롯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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