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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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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을 뒤집다

입력
2015.01.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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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해부

대니얼 카너먼 외 21인 지음ㆍ존 브록만 엮음ㆍ강주헌 옮김

와이즈베리ㆍ524쪽ㆍ2만2,500원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마트폰 등을 통해 얻는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도 복잡해졌다. 이에 따라 소비, 재테크, 직장생활 등 현대인들에게 선택과 판단을 요구하는 분야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각의 질’은 결국 ‘삶의 질’로 이어진다. 그런데 개개인의 생각을 좌우하는 심리적 요인은 무엇일까. 예측과 선택, 판단 등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걸까.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세계적 권위자 대니얼 데닛.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세계적 권위자 대니얼 데닛.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생각의 해부’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책은 인간의 생각을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언어학,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저술에 참여한 석학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헐고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 ‘블랙 스완’의 저자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을 예견해 ‘월가의 현자’로 주목 받은 나심 탈레브,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저자 대니얼 길버트,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대니얼 데닛, 뇌과학 및 신경학계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는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인지발달 분야에서 혁신적 연구로 주목 받은 사이먼 배런코언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22인이 자신의 연구 배경과 그간의 결과를 책에 담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한 만큼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식의 통섭’이다. 저자들은 최신 뇌과학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생물학적 사고와 심리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도 하고 사회심리학, 행동경제학, 철학 같은 인문사회학적 연구로 경제활동 주체, 유권자 등 사회적 인간으로서 겪게 되는 판단과 의사결정을 분석하는 등 인간의 생각을 다각도로 점검한다.

각 장을 꼼꼼히 살펴보면 지식의 깊이와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독일 베를린 막스플랑코연구소의 인간개발연구소장이자 인지과학계의 거장인 게르트 기거렌처는 2장 ‘똑똑한 어림셈법’에서 직관적 사고의 기능과 유용성을 설명한다. 그는 제한된 시간과 정보를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어림짐작은 사람들이 가장 신속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추동력임을 역설한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 행인들에게 주식회사 목록을 보여주고 인지도가 높은 순으로 주식을 고르게 했다. 그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인지도가 높은 순서대로 10%의 주식을 구매해 6개월을 지켜봤다. 그 결과 행인들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고른 주식이 무작위로 선택한 주식이나 지수변동에 의거한 블루칩 펀드보다 수익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직관적 사고가 오류와 왜곡의 지름길로 인식돼 온 기존 통설을 뒤집는 결과였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정서예측’ 연구를 소개하며 인간이 경제 및 소비 활동 등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정서예측이란 미래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로 인해 인간이 경험하게 될 정서적 반응을 예상하는 것이다. 길버트 교수는 “사람들이 경제행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긍정적인 정서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얻기”위해서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활동은 결국 정서예측적인 성향을 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정서예측에 기댄 인간의 사고는 사실 오류투성이고 이 같은 오류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낙선한 경우, 실연한 경우 등의 상황을 배경으로 정서적 예측을 했을 때와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을 때의 감정을 비교해보았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승리하면 수개월 동안 행복하겠지만, 그 후보가 패하면 수개월 동안 불만스러울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복은 선거 결과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낭만적인 사랑 관계의 파경을 조사해도 똑 같은 양상이 확인됩니다.”(17쪽) 그는 이처럼 정서예측이 엇나가는 상태, 즉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원래의 심리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를 ‘심리적 면역체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책의 대표 저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마지막 장 ‘직관적 사고의 결함과 경이로움’에서 그가 40여 년간 매진해온 연구를 소개하며 책의 전체 내용을 갈무리한다. 그는 인간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의 대부분은 무의식이거나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직관적 사고이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정돈된 사고’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인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측보다 직관에 의지해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직관이 예측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낫는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책은 ‘적절하게 조절되는 안정되는 마음’ ‘사사분면: 통계학의 한계’ ‘청소년기의 뇌발달’ 등 각 장마다 생각과 사고에 대한 기존 통설을 깨드리며 신선한 통찰을 전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데 모여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는 비공식 모임인 엣지재단의 저서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3편 격으로 스티븐 핑커와 필립 짐바르도가 참여한 1권 ‘마음의 과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데니스 더턴 등이 문화적 쟁점을 해부한 2권 ‘컬처 쇼크’와 함께 읽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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