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협박을 시작했을 때, 그걸 협박으로 느끼고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집 앞에서 밤새 기다렸더라고요. 출근하는데 무릎을 꿇으면서 막 호소를 하는 거예요.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널 위해 모든 걸 버렸다고 애원해요. (…) 그 사람이 심해지면 나는 더 많이, 여러 번 잘못했다고 하고, 어떻게든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서 풀어야만 종결이 되니까 어떻게든 말려야 된다, 그 사람이 풀릴 때까지 붙잡고 있었던 거죠.”(20대 회사원, 폭언ㆍ협박ㆍ신체적 폭력ㆍ금전관리 요구ㆍ신체사진 촬영 피해자)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못 헤어질까, 친구들한테는 진짜 헤어질 거야, 이 말만 달고 살았거든요. 폭력을 저지른 그 사람이 나쁜 거지만 저도 잘못한 것 같아요. 대처를 제대로 못한 거죠. 걔가 예상한 반응을 계속 보였으니까… 걔도 더 강해지고, 저를 그렇게 이용한 것 같아요. 적절한 대응을 제가 못해서.”(20대 대학생, 폭언과 협박ㆍ신체적 폭력ㆍ감시와 통제ㆍ감금ㆍ나체사진 및 동영상 촬영 피해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겪는 데이트 폭력
한국여성의전화 이화영 성폭력상담소장이 지난해 쓴 석사논문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관계 중단 과정에 대한 연구’(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에서 발췌한 위의 두 사례는 피해자조차 내면화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보여준다. 사랑은 폭력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그릇된 연애관이 우리 사회에 횡행한다. 저런 사람을 선택하고 단호하게 벗어나진 못한 게 잘못이라는 피해자에게로의 책임 전가, 남자의 비위를 맞추고 화를 돋우지 않는 게 여성의 마땅한 도리라는 고정된 성 역할도 만연해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편견과 폐해들이 공고한 사회적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곳에서 과연 데이트 폭력이 개인과 개인 간의 사적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데이트 폭력 발생 비율은 신체적 폭력으로만 국한할 때도 데이트 경험이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에 해당할 정도로 빈번하다. 1990~2000년대 다양한 실태조사에서 데이트 중인 연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비율이 30~50%로 집계된다. 정서적 폭력을 포함하면 무려 90%에 달한다. 하지만 달콤한 연애를 시작하면서 폭력을 예상하는 이는 없다. 당연히 대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이나 방법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각별하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가 매운 쉬운 구조인 것이다.
‘조선대 의전원 사건’ 등 올 한 해 유독 잇따랐던 데이트 폭력 사건은 데이트 폭력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킴과 동시에 주로 여성인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폭력 없이 안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슬픈 노하우를 요구한다. 올해의 10대 유행어 중 하나로 꼽혀도 좋을 이른바 ‘안전이별’이다. 스토킹 당하지 않고, 감금 당하지 않고, 얻어맞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 유출 협박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면서 이별하는 법. 부당하지만 익혀야만 하는 생존의 기술이 됐다.
데이트폭력은 권력과 통제의 문제
데이트 폭력은 신체적ㆍ성적 폭력 외에 정서적ㆍ경제적ㆍ언어적 폭력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게 국제적 기준이다. 때문에 이것이 폭력인지 아닌지를 감별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특히 폭력 발생 초기일수록 쉽지 않다. 짧은 치마를 입고 나가면 남자친구가 화를 낸다, 폭력일까? 애인이 회사 동료들과 술 먹는 걸 싫어한다, 폭력일까?
핵심은 통제다.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의 문제, 즉 파트너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문제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연애 폭력을 연애 관계에 있는 일방이 상대가 반대하는 것에 대해 통제적이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밀기나 때리기, 물건 던지기 등 신체적 폭력, 원치 않는 성행위의 시도나 강요 같은 성폭력, 다른 사람이나 애완동물을 해치겠다는 위협 등 신체적ㆍ성적 위협, 친구나 가족들을 못 만나게 하는 등의 감정적 학대를 예시로 들었다.<표1 참조> 파트너에게 통제 받는다고 느끼거나 파트너가 두렵게 느껴진다면, 신체적 가해가 없었더라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 다음 단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미 복지부의 권고다. ‘당신의 본능을 믿고 안전 계획을 수립하라’는 것. 그 방편으로 복지부는 웹사이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과 어떤 경로로 탈출하고, 가해 파트너의 접근을 막을 것인지, 탈출 시 어떤 서류와 준비물들을 챙겨야 하는지의 매뉴얼을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표2 참조>
“제가 판별의 기준으로 늘 강조하는 말이 ‘사랑은 폭력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억압하고 때린다면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에요. 폭력인 겁니다. 나의 책임이 아니라 상대의 책임인 거고요.” 이화영 성폭력상담소장은 “보통 이별폭력만 많이 얘기하지만, 연애 1개월 전후로 최초의 폭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의 문제, 제도 밖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애 폭력은 파트너를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복속시키려는 권력의지의 발현이다. 너무 사랑해서 일어나는 이별폭력은 없다. 이별의 주체로 상대방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별 여부를 결정하는 힘이 한 쪽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과 달리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죠. ‘누가 그런 남자를 만나래?’ 식의 개인의 선택이 돼버리는 거예요.” 이 소장의 데이트 폭력 논문에 따르면, 폭력 이후 관계를 단절하지 못하고 지속하는 비율이 데이트의 경우 40%로 결혼보다 더 높았다. 자녀양육이나 경제적 종속 등 구속력이 훨씬 적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특히 폭력적 남성이 보이는 전형적 용서 방식인 울기, 빌기, 무릎꿇기 등의 행동은 낭만적 맥락 속에서 진심 어린 반성으로 잘못 인식돼 관계 중단의 의지를 약화시킨다. 한국사회가 폭력을 사랑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의 한 유형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에 폭력행위가 사랑인 양 낭만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고정된 성 역할까지 가세한다. 여성은 오랜 세월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수동적인 성격을 매력으로 칭송 받으며 살아왔다. ‘여자가 애교가 있어야지’ ‘붙임성이 좋아야지’같은 말을 들으며 자란 여성에게 ‘노’라고 분명하게 거절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가치로 주입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고 희생하면 폭력적인 파트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비합리적인 신념인 이타적 망상이 생겨나는 거죠. 개인적 노력만으로 이런 폭력적 파트너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주변에서 너의 연애가 이상하다고 얘기한다면, 귀담아 듣고 의논하세요. 관계의 완전한 단절과 차단이 필요하다면 주변의 지지집단이나 전문가의 철저한 도움을 받아야 해요.”
‘스톡홀름 신드롬’ 극복하기
‘왜 맞고도 관계를 지속하느냐’는 피해자를 향한 힐난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에서도 틀렸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많은 연애폭력 피해자들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대부분 “네가 단호한 의사를 밝히면 된다”는 피해자 책임주의만 확인될 뿐이다. 신체적 폭력 후 사과 및 번복, 다른 형태의 억압과 통제가 무한 반복되는 연애폭력은 이별 통보 후 더한 폭력이 돌아오는 게 패턴이다. 이때 주변으로부터 결정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 피해자에게는 좌절과 체념이 내면화한다. ‘내가 잘하면 좋아지겠지’에서 시작한 체념의 내면화는 ‘다른 여자가 생겨서 저절로 헤어지게 되면 좋겠다’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별의 주체로 자신을 전혀 상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중단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으면서 피해자는 상대가 가진 장점에 집중하기도 한다. ‘화를 돋우지 않으면 큰 어려움은 없다’ ‘술만 안 마시면 괜찮은 사람이다’ 식의 스톡홀름 신드롬(인질이 인질범에 동조하는 심리)을 겪는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여성으로 귀결됩니다. 가해자도 네가 잘못해서 때리는 거라고 말하죠. 왜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냐는 물음은 피해자에게 너의 잘못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줍니다.” 이 소장은 “외도를 해도 여자가 못생긴 탓인 사회에서 내 사랑이 폭력이라는 걸 드러내고 얘기할 수가 없죠. 존중 받지 못하는 여성으로 의미화되니까 자존감은 떨어지고 여성성은 손상돼요. 감추고 숨기면서 심리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의 안전연애 코치’로 불리는 작가 더니스 올센은 책 ‘여대생을 위한 안전한 연애’에서 “누구나 나쁜 연애경험에 연루될 수 있다”며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사람은 바뀌지 않으므로 내가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다만 이별을 위해서는 반드시 안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왜냐고? “당신은 소중하니까.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까.”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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