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귀국길에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해 가기로 했다”고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의 의미를 전했다. 하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이 빠진 알맹이 없는 합의라는 비판과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방침이 한미 정가를 흔들고 있다.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 냉전체제 해제의 단초를 마련한 세기적 대화의 의미가 이런저런 비판과 논란에 가려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회담에 임한 미국과 북한이 적극적인 설명과 신속한 약속 이행으로 논란과 의심을 진화할 필요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CNN은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어떤 구체적 상응 조치도 확보하지 못한 채 핵심적 사안을 양보했다”면서 향후 협상력 저하 등을 경계했다. 국내에서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비핵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김정은에게 한미 군사훈련 중단의 선물을 안겨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한미동맹 약화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외교 관례를 따르지 않더라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매우 도발적인 워게임은 부적절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일리가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유인 카드를 제시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간 사전조율 없이 이런 돌발 방침이 나온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 삭감을 주장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다분해 보여 한미 간 보다 정밀한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
북미 공동성명에 기대했던 CVID를 명문화하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알맹이 없는 합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하다. “(협상) 시간이 모자라 CVID를 명문화하지 못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그야말로 포괄적인 공동성명의 구조를 감안하면 비핵화 로드맵은 후속 협상과 2,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도리어 북미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행동대 행동 원칙 아래 신뢰를 확대해 가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에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수용으로 화답하고, 북한의 적대행위 중지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내미는 일련의 흐름은 의미심장하다. 양측이 초기 단계의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교환하는 행동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그와 나 사이에 신뢰가 생겼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불신을 일축했다. 북미 핵 합의가 신뢰 부족으로 번번이 파기됐던 과거를 떠올리면 전례 없는 정상 간 신뢰를 토대로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각 단계를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통과해 나갈 수 없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만 할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