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 1. 일을 하다 사망한 남녀비율을 조사한 미국 노동부 통계 결과다. 남녀 경제인구 비율은 비슷한데, 근무 중 사망한 미국인 중 92%는 남성이었다. 남성으로 살기 유리한 세상이라고 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남성은 여성과 비교해 정말 더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는 걸까. 통념과 현실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남성은 여성에 비해 훨씬 더 긴 수감 시간을 선고받는다는 조사도 있다.
책은 남성지배사회라는 통념 속 ‘멍든 남자’를 얘기한다. 여성들만 고통스럽게 일하는 게 아니다. 남성들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건 극소수 최상위층으로 인한 착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숙자와 범죄자 등 최하위층은 남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미국 심리학자인 저자는 남성도 남성지배사회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그 피해는 때론 여성보다 크다. 저자는 ‘문화가 남성을 착취한다’며, 기존의 젠더 논의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슈를 꺼내든다.
남성이 만든 남성지배사회에서 남성 착취라니. 억압된 여성의 역사를 외면한다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저자는 남성지배를 ‘문화의 선택’이라고 본다. 남아선호사상? 노인 부양을 국가에 기댈 수 없고 딸보다는 아들한테 지우는 게 낫다는 배경에서 생긴 문화가 결국 남성을 이용한다는 해석이다.
전시가 아닌 평화의 시대에 남성은 더 ‘소모’된다. 남성보다 여성의 수를 늘리는 게 인구 경쟁에서 유리하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들여다보면 번식의 극대화를 위해선 모든 여성과 소수의 남성들만 오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사는 게 좋다. 나머지 남성들은 결국 소모적인 존재일 뿐이다. 자연이 유전자 실험을 한다면 여성보단 남성을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자연은 남성들에게서 천재와 정신지체자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극단적 설명을 한다. 더 나아가 “남성은 자연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실험용 쥐”라는 악몽 같은 주장까지 한다. 남성지배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음모가 아니라 문화와 자연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저자가 ‘남성착취’라는 이야길 꺼낸 것은 남성이 어떤 처우를 받는지 알려 남녀 모두에게 공정해지자는 바람에서다. 능력이 아닌 성향에 대한 남녀 차이를 알고, 이를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한 것도 남녀의 차이를 바탕으로 서로 장점과 부족함을 맞바꾼 트레이드오프 덕에 가능했다. 남성에게 여성성을, 여성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성상위시대라며 남자다움의 특전과 의무를 없앤다면 남성들이 의무와 책임을 거부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는 “남녀에게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보다 그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녀를 갈등관계로 몰아 붙이는 극단적 페미니즘을 경계했다.
책은 연구 논문이라기보단 에세이에 가깝다. 새로운 젠더 논의를 촉발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여성 동성애자 커플은 남성 동성애자 커플에 비해 빈곤한 경향이 있다는 등 근거가 약한 주장을 바탕으로 논의를 펼쳐 때론 설득력이 떨어진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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