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23ㆍ여)씨는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홍익대를 다니는 임씨는 지난 달 19일 오후 11시쯤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자 남자친구인 S(23)씨와 함께 귀가를 위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으로 재촉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저녁 데이트를 위해 학교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맥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문제는 임씨 커플이 모 힙합 클럽 앞을 지날 때 쯤 일어났다. 클럽 건너편에서 술에 취한 채 담배를 피우던 40대 남성 2명이 임씨를 보며 “저 X도 외국인에 환장했네” 라는 말을 내뱉었다. 화가 난 임씨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들은 되레 클럽 앞에서 술에 취한 채 외국인 클러버들과 스킨십을 하는 한국 여성들을 가리키며 “저들과 너 같은 X들이 한국 망신 다 시킨다”고 비난했다. 임씨는 “남자친구가 오히려 만류해 자리를 피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국제연애를 색안경 끼고 보고 있다”고 분노했다.
2030세대에게 ‘국제연애’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님에도 불구, 기성세대 등 사회 일부에 남아 있는 왜곡된 시선은 이들 커플에게 커다란 폭력이 되고 있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그냥 유행가 가사일 뿐, 아직도 편견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국제연애를 두고 일반연애와는 다르게 순수한 감정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국제커플들을 말한다. 흑인남성과 사귄다는 한 여성은 "마치 나를 섹스에 환장한 여자 보듯이 한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영국 국적의 조던(24)씨와 3개월째 연애 중인 안지수(24ㆍ여)씨는 “나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왜 죄를 지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씨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일부 내 또래의 남성들 중에도 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외국인은 문란하다는 식으로...일반 한국인 커플이라면 들을 필요도 없는 온갖 얘기를 다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특히 “한국인 커플들이 길거리에서 스킨십을 하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커플이 하면 마치 19금 포르노 보듯 한다. 이는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폭력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들 국제커플은 외국인들을 만나는 자신들을 속물이나 비하하는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장했다. 태국 국적의 여자 친구와 2년째 연애 중인 김형진(28)씨는 “국제연애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하고 심지어 우리 여성들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소수 존재하듯, 일부 잘못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외국인 역시 소수”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의 행동을 외국인 전체의 행동으로 일반화 시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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