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와 직ㆍ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사람들은 대안학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대안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다. 전통적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 졸업생인 오한길씨 등 4명이 지난해 전국의 대안학교 졸업생 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안교육을 받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3.8%(19명)만 그렇다고 답했다. 20대 중반의 대학생인 한 대안학교 졸업생은 “졸업하고 앞길이 막막해 방황하긴 했지만 대안교육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후회는 없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졸업 후 현실의 벽을 느끼는 졸업생들이 적지 않았다. 설문에 응한 20대 후반의 또 다른 졸업생은 “대학 가서 대안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다 부적응자가 돼 휴학하게 됐다”며 “적당한 위계 질서와 제도 교육이 있었더라면 적응이 쉬웠을 텐데 대안적인 사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는 교과나 지식 중심의 교육을 하지 않는 대안학교 특성상 일상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20대 후반 대안학교 졸업생은 “지인들과 대화를 할 때 가끔씩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후회된다”고 했다. “열심히 놀기만 해서 기본 상식이 많이 부족하다” “정규교육과정과 많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점 말고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답도 있었다.
‘노이로제에 걸린 학자를 배출하느니 행복한 청소부를 배출하는 게 낫다’는 게 대안학교의 일반적인 교육 지향점이라 현실과의 괴리문제, 방향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반학교가 대안학교로 전환한 남해 상주중 여태전 교장은 “대안학교는 세속적 출세의 디딤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가를 학생 스스로 고민하는 장”이라고 했다. 반면 하태욱 건신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초창기 졸업생들이 대안적이지 못한 사회로 진출해 쓰라린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가ㆍ비인가 등 다양한 대안학교 졸업생과 관계자의 말이다.
▦오한길(21ㆍ제천간디학교 졸업ㆍ디자인 공부 중)
친환경농산물 매장을 운영하는 엄마와 귀농한 아빠, 운동권 출신으로 입시경쟁 교육에 뜻이 없는 엄마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만든 대안학교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다녔다. 그리고 간디중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간디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공교육의 기본 교과과정을 해야 하는 인가 학교보다는 자유분방한 미인가 학교를 찾았다. 제천간디학교는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10% 정도다. ‘비싼 등록금을 들이면서 왜 굳이 대학가서 배워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나 역시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학(大學)은 말 그대로 큰 배움이지 않나. 졸업하고도 인문학 강좌 같은 것들을 닥치는 대로 들으면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작은 시골 학교 안에서 지내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인간관계나 삶에서의 지혜는 많이 배웠다고 자부한다. 반면 굶어 죽지 않고 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은 심각하게 했다. 졸업 후에도 불안감은 여전했다. 하지만 대안학교 졸업생 선배들의 생활과 얘기를 들어보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다 있구나, 천천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이도 저도 아닌 낙오자가 됐을 거다. 또래보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김정한(25ㆍ산청간디학교 졸업ㆍ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중학교 1학년까지 제도권 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홈 스쿨링을 했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좋아했다. 나도 잘하는 게 있는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평범한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내 의견을 존중해줬다. 처음부터 대학에 가려던 것은 아니다. 홈 스쿨링을 할 정도로 학교가 싫었기 때문에 굳이 대학 가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싶었다. 대학 진학을 마음 먹은 건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홈 스쿨링과 대안교육을 받아본 내가 다양한 길이 있다고 걸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교육을 알리는 게 꿈이 됐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방송 프로듀서가 되기로 했고, 그래서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산청간디학교는 인가 학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능을 치고 대학 가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당시 한 학년이 40명인데 30명 이상 수능을 봤다. 하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이 학교에 오는 학생은 없다. 시골 기숙사 생활에 사교육은 생각도 할 수 없고, 적은 학생수로 내신도 절대 불리하다. 중요한 건 대학이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치는 준비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 3년 동안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한 후 대학 진학을 결정한 친구들은 대학에 가서도 더 행복할 수 있다.
▦박다현(22ㆍ경기 분당 이우학교 졸업생ㆍ한양대 작곡과 4학년)
영어교사였던 엄마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나처럼 일반중학교를 다니고 이 학교에 온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 진학까지 염두에 두고 왔다. 나 역시 그랬다. 90% 가까이 대학에 갔다. 1, 2학년 때는 학교에서 대학 진학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고3이 되자 대학에 가고 싶은 친구들과 대학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 친구들, 학교 간에 갈등이 생겼다. 선생님들은 대학에 가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학교는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고3 때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입시 위주 교육을 전혀 받지 않다가 갑자기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입학할 때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물론 누구누구는 사교육을 받는 것 같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기도 했지만 내 생각에 별로 없었을 것이다. 평일에 수업이 늦게 끝나 학원 갈 시간이 없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정치인 등 유명인사를 부모로 둔 학생들이 몇몇 다니면서 귀족학교 이미지가 있는 모양인데 사실 어딜 가나 있는 친구들이었다. 초기에는 교육비가 비쌌다고 하던데 교육청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일반학교와 똑같은 학비를 낸다. 처음에는 두발규제가 너무 싫어서 이우학교 진학을 마음 먹었다. 나는 원래 수업시간에 졸고 집에서 혼자 공부했었는데 이 학교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다.
▦민경우(전 범민련 사무처장)
서울 금천구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대안적 교육을 모색 중이다. 기존 대안학교의 과(過)를 답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대안교육의 문제점을 살펴보게 됐다. 지난 3년간 대안학교 출신 학생들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요즘 학생들은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본다. 그래비티 주인공은 땅 위를 딛고 서서 21세기에 중력이 무엇인지 묻는다. 오늘날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의 창조물 간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다. 교육은 사회와 동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그와 밀접히 결합되어야 한다. 미래 사회는 고도지식사회다. 과학이나 수학을 모르고는 발맞춰 살 수 없다. 그런데 대안학교에서는 인문고전을 중시하고 수학, 과학에 대한 지식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의 편향이다. 교과 지식은 또래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떨어진다. 대안학교 학생들의 자질이 떨어진다기보다는 대안학교의 커리큘럼 자체가 그런 경향을 조장한다. 대안학교 설립 취지가 자연과 벗하면서 인성 위주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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