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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떻게 알았지?

입력
2017.01.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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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한자 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임금이 배라면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물은 배를 가게 할 수 있지만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올해 필자의 화두는 한자 공부다. 공부하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하 과도한 학문적 해석 금지) 권위나 위엄을 나타내는 위(威)는 계집 녀(女)자에 개 술(戌) 자로 이루어져 있다. 연약한 여자에게 개처럼 구는 게 권위라는 거다. 땅콩 회항이나 재벌 3세 술집 폭행을 보면, 약한 사람에게 개 폼 잡는 인간이 권위를 찾는다.

특히 술을 마시고 약자를 괴롭히는 건 최악이다. 술(酒)을 마시고도 얼굴(容)이 멀쩡하면 맑은 술 수(䤇) 자가 되지만 술 마시고 손(手)을 잘못 써서 남의 엉덩이를 만지거나 폭행하면 큰일난다. 술+손은 그래서 매우 취할 모(酕) 자를 만든다. 또 술을 마시고 남에게 졸(卒)로 보이면 역시 매우 취할 취(醉)의 상태가 된다. 과음을 하더라도 장수처럼 젊잖게 보여야 좋은 거다.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지만, 룸살롱 같은 데서 개처럼 술을 마시면서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인간들은 반드시 꾀를 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술 주와 개 견이 합쳐지면 모략 유(猷)자가 된다.

숨길 장(臧)자는 신하 신(臣)자와 죽일(戕)자로 되어 있다. 신하(관리)들이 찾아와서 세금을 뜯어내려고 죽이겠다고 하니 숨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숨겨 놓은 패물(貝)을 어쩔 수 없이 넘기면? 뇌물이 된다. 숨길 장 앞에 조개 패가 붙으면 뇌물 장(贜) 자다.

한자는 가끔 막힌 의문을 풀어 주기도 한다. [논어]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도대체 ‘좋아하는 자(好之者)’와 ‘즐기는 자(樂之者)’가 무슨 차이일까? 동서고금의 석학들이 탁월한 해석을 내 놓았기에 필자가 더 말해 봐야 사족일 뿐이다. 다만 이 구문의 번역을 읽고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아 고민하던 중, 좋아할 호 자와 즐길 락 자의 해석을 뒤지다 영감을 얻었다. 호는 계집 여(女)와 아이 자(子)로 되어 있다. 남녀가 좋아한다는 뜻과 더불어, 아들을 낳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좋아한다는 뜻이 있다. 자전에는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주위에서 좋아하다’라는 해석도 있다. 이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측면과 더불어 타인이 보고 좋아하는 측면도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좋아한다. (나중에 상무 되어 봐야 재벌 3세 폭행 피해자 합의하러 다닌다) 서울대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좋아한다. (몇 년 뒤에 검사 돼 봤자 처가 빽 없으면 빡친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니 다들 좋아한다. (기쓰고 5급 되어 본들 헬스 트레이너 3급에 밀린다)

즐길 락(樂)자는 순전히 자기만의 즐거움을 뜻한다. 음악을 들으며 유유자적하고 취미를 즐기며 만족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하는 것과 무관한, 절대 열락과 자유의 경지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글이 과연 남들이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읽을 독(讀)자의 의미가 시장에 내다 팔 만한(賣) 말씀(言)이라는 걸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사치(奢侈)하다는 어떤가. 자기의 실제보다 크게 보이려 할 때 사치할 사가 되고 사람이 뭔가를 많이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사치할 치가 된다. 교만 할 교(驕)자도 재미있다.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루어져 있다. 말을 타고 높은 데서 세상을 내려다 보게 되니 교만해 진다는 말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20대 철부지 정 아무개와 김 아무개는 둘 다 승마를 했고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수 천년 전 만든 한자인데 설마 미래를 예견한 건 아니겠지?

미래 예견의 탁월한 예는 또 있다. 성씨 최(崔) 옆에 사람 인(人)이 붙으면 독촉할 최(催) 자가 된다. 최순실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꾸 독촉했다는 의미다. 헐이다.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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