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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 마르지 않는 시리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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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 마르지 않는 시리아의 눈물

입력
2015.04.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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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아수라장, 22만명 사망·주택 120만 채 파괴

구호기관 떠나는 지역 늘어, 접근 불가지역 480만명 생활

38억달러 지원 약속했지만, 지원국들은 약속 미루기 다반사

수백명의 시리아 난민이 지난 2013년 8월 15일 접경 지역인 이라크 북부 다후크주로 들어가고 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제공
수백명의 시리아 난민이 지난 2013년 8월 15일 접경 지역인 이라크 북부 다후크주로 들어가고 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제공

유엔이 주도한 ‘제3차 시리아 인도적 지원 국제회의’가 개최된 지난달 31일, 쿠웨이트 바얀궁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지난 1, 2차 때보다 훨씬 많은 38억달러(약 4조1,500억원) 규모의 지원금 서약이 이뤄진 덕이었다. 5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과 극단주의 세력 창궐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시리아에 작게나마 희망이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에 수백명의 참석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얀궁을 나섰다.

순간, 유독 어두운 표정으로 회의장 한 켠을 지키는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회의 시작 전부터 걱정이 많아 보였던 레바논 출신 기자 샘 하다였다. 세 번의 회의 모두 취재했다는 그는 “앞선 두 번의 회의에서도 지원금 약속은 있었지만, 정확히 이행한 국가와 단체는 얼마 없었다”다며 “지원금 납부를 ‘나중에’라는 말로 미루는 경우가 많아 지원 대책이 제 때 시행 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각국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시리아 지원 국제회의가 세 번째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40여개 구호단체가 전날 마련한 기금 마련 홍보 현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터키 구호단체 관계자인 일라이디 란은 “시리아의 위기 상황을 책자나 보도자료를 통해 널리 알려 관심을 호소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편”이라고 전했다. 어른들의 보살핌를 받지 못한 채 절망에 빠져 있는 시리아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옆에 선 그는 “시리아 이슈가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 게 답답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극단주의 창궐에 잊혀진 시리아 난민들

이들이 이렇게 비관적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레바논과 터키는 최근까지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집계된 1,100만명 시리아 난민 중 174만명이 터키로 몰려 들어갔다. 레바논도 전체 국민의 26% 규모에 달하는 120만 난민을 받았고, 거금을 들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타리 시리아 난민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63만명을 수용하고 있는 요르단과 이라크(25만명) 이집트(13만명) 등도 근심이 커지고 있다. 요르단 정부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 “요르단에는 수십만 시리아 난민이 있지만 이들을 돕기 위한 자원은 이미 바닥난 상태”라며 “형제 국가 시리아를 돕기 위해 모두가 앞장서달라”고 참석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하지만 시리아에 근거를 둔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탓에, 시리아에 살고 있는 주민 및 난민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세습 독재정권에 맞서 2011년 일어난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정부 세력의 다툼 ▦반정부 진영 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의 충돌 ▦IS 격퇴 움직임 등 갈등이 겹겹이 중첩되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이로 인해 사망한 시리아인이 22만여명. 120만개 주택이 내전과 공습의 영향으로 파괴됐고 160만명이 여전히 피난처를 찾지 못해 길거리에 몸을 뉘이고 있다. 하루 한 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980만명이 넘고, 1,160만명은 식수를 얻으려고 폐허가 된 마을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다.

무력 다툼은 지속되고 있지만 전체 병원 가운데 43%만 겨우 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폭탄이나 총에 부상을 당한 이들이 쉽게 치료 받을 수가 없다. 매일 평균 1,480명 임산부가 열악한 조건에서 출산을 하거나 신부인과 질병을 호소하고 있고, 간단한 백신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전염병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시리아 내 학교의 4분의 1이 파괴됐으나 어른들은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들은 골격이라도 남아있는 학교를 찾아 전부 피난처로 개조하느라 바쁘다.

치안이 악화되면서 구호기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도 늘고 있다. 지난해 유엔이 시리아 내 ‘접근 불가’지역으로 분류한 곳에 사는 인구는 480만명이나 된다.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던 의사들은 치안이 악화돼 대부분 시리아를 떠났거나 납치됐다. 지난 한 해에만 봉사자 9명이 시리아 내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제사회 구호 손길은 거북이 걸음

시리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오래 전부터 울려 퍼지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위험한 시리아 내부 사정 때문에 참상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그 비극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날 회의 참석자 중 다수도 부모를 잃고 폐허 속에서 사는 시리아 아이들의 영상을 보고 나서야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에 임했다.

이런 현실 탓에 시리아를 돕기 위한 기금 마련 회의는 3차까지 진행됐음에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유엔은 2013, 14년 열린 두 차례 회의에서 각각 45억달러와 65억달러 지원을 호소했으나 약속된 모금액은 15억달러, 24억달러에 그쳤다. 이번 회의에서 약속된 38억달러 지원금도 유엔이 제시한 84억달러에는 한참 모자란 액수다. 그나마 앞선 회의에서 지원금을 약속한 대부분 국가들도 해당 연도 말까지는 기부를 하지 않다가 다음 회의를 코앞에 앞두고 나서야 납입을 마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회의에서 약속된 지원금 중 납부된 금액은 90%가량 된다”면서 “그 정도 모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국제원조자금추적시스템(FTS)에 따르면 2차 회의가 끝난 지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11월, 서약된 전체 지원금 중 25%가 채 납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1,000만달러 지원을 발표한 신동익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은 “다른 외교적 현안보다 시리아 위기 해결에 사람들이 관심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볼 때 시리아 난민 해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밝혔다.

모금 외 사태 근본적 해법 나와야

이번 회의가 시리아를 위한 금전적인 모금에만 방점이 찍혀있는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많았다. 일라이디는 “이번 회의에서는 각국이 시리아를 위해 얼마를 내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논의되고, 구체적 대응 계획 설계는 하지 못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카타르에서 온 칼리드 알자바르 역시 “이번 회의에서 각 대표가 시리아에 얼마씩 지원하겠다는 내용 말고도 다른 해법을 제시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반응이었다.

반 총장도 이날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시리아 위기 해결 위해서는 기금 마련 외에도 ‘정치적 대화’가 필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대화로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전에 군사력부터 사용하고 있다”며 “폭력적 수단보다 정치적 대화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밝혔다.

시리아 위기 해결을 위한 정치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합의에 다다르진 못했다. 지난해 1월 22일 열린 이른바 ‘제2차 제네바 회담’이 가장 최근 사례다. 당시 회담은 과도정부 수립에 합의한 ‘1차 제네바 회담’의 후속 회의였지만, 참가국들이 시리아 정부와 반군 편으로 갈려 상대를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집하기만 했다. 반군을 지지하는 미국 등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협상 자격이 없다며 과도정부 수립 과정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테러와의 전쟁을 핵심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며 미국 측 뜻대로 권좌에서 물러날 뜻이 없다고 고집해 결국 양측은 이견만 확인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렇게 중동의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충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 시리아인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OCHA의 ‘2015 시리아 대응 계획’ 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수년 안에 시리아에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으면 620만 인구가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한다. 100만명이 시리아 사태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없어 고통에 시달리고, 290만명의 아이들은 예방 접종을 하지 못한 채 단순한 질병에도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회의 다음 날 오전 마주친 샘은 “전 세계 사람들이 시리아인 수백명이 모여있는 난민캠프를 눈으로 직접보지 않는 한 시리아 위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면서 “그 열악한 캠프마저 수용시설이 부족해 갈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또 다른 시리아인들의 모습이 쉽게 기억에서 떨쳐지지 않는다”고 우려를 거두지 못했다.

쿠웨이트=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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