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서둘러 배상하면서 한국 소비자는 철저히 외면하는 비상식적 행태에 분노가 치솟는다.”
회사원 심모(37)씨는 6년 전 구입한 폭스바겐 ‘골프’를 볼 때마다 혈압이 오른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난 뒤 폭스바겐 한국법인은 토마스 쿨 사장 명의의 편지를 보내 “진심으로 사과하고,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어떤 ‘조치’도 진행된 게 없다. 손해배상은커녕 1년이 다 돼가는데 결함시정(리콜)마저 감감무소식이다. 심씨는 “한때 애지중지하던 애마였는데 이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애물단지가 돼 끌고 다니는 것도 부끄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폭스바겐 차량 국내 소비자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정상 품질로 믿고 산 차는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조작됐고, 이런 차가 판매되는 과정에서 시험성적서 조작 등 불법까지 자행된 혐의가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런데도 폭스바겐 한국법인은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있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 폭스바겐은 일찌감치 고개를 숙이고 소비자 배상 방안을 마련하는 등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폭스바겐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원에서 배상금으로 150억 달러(약 17조5,000억원)를 내기로 최종 합의했다.
법조계와 국내 소비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유무가 한국과 미국에서 폭스바겐의 대응을 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와 달리 악의적 행위에 대해 피해액 이상의 배상액을 부과하는 미국에서 소송으로 갈 경우 폭스바겐은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배상금을 물 수 있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을 시인했고, 미국 피해 차량은 50만대도 넘는다. 강력한 제도 아래서 ‘가래’(징벌적 손해배상) 대신 ‘호미’(배상합의)를 선택한 셈이다.
2014년 1월 폭스바겐 사륜구동 디젤 승용차 ‘CC’를 산 대기업 직원 이모(32)씨도 “폭스바겐은 미국과 한국의 법규가 다르다는 이유를 대지만 동일한 차량에 동일한 피해라면 합리적 수준의 배상안을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조작된 차를 판 것보다 이후의 행태가 더욱 실망스럽다”고 혀를 찼다.
현재 법무법인 바른이 주도하는 국내 및 미국 민사소송에 참여한 폭스바겐 디젤차 소유자는 4,542명, 가솔린차 소유자는 29명이다. 지난해 11월 인증 취소된 12만5,522대에 추가로 취소 예정인 7만9,000여대까지 총 20만대가 넘는 차량 대수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다. 폭스바겐은 소송 참여자만 대응한다고 계산할지 모르지만 전 사회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여론이 불붙고 있다. 하종선 바른 변호사는 “우리 손해배상액은 미국에 비해 평균 20분의 1, 적게는 100분의 1 수준이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도 기업에 큰 부담은 아니다”며 “오히려 적절한 피해자 배상과 함께 기업의 도덕성을 높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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