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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돋보기] "대헌아, 넘어져도 괜찮아"

입력
2018.02.19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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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승에서 황대헌이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넘어지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승에서 황대헌이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넘어지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쇼트트랙은 임효준의 첫 금메달에 이어 17일에도 최민정의 금메달과 서이라의 동메달을 보태 선전하고 있다. 남은 종목에서 3~4개의 금메달을 추가한다면 한국 선수단의 목표 달성과 함께 명실 공히 쇼트트랙 최강국의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는 걸 난 너무 잘 알고 눈에 보인다. 끝없는 부상을 극복한 임효준, 500m 실격 좌절을 딛고 1,500m에서 세계 최정상의 실력을 보여준 최민정, 대표팀의 중심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맏형 서이라와 맏언니 김아랑까지.

유독 한 선수가 마음에 걸린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고교생’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황)대헌이다. 대헌이는 지난 10일 열린 1,500m 결승에서 넘어져 메달을 따지 못했다. 1,500m 세계랭킹 1위인 대헌이가 얼마나 분통해 했을지는 당사자가 아니고는 모른다. 서이라, 임효준과 함께 우리 선수 3명이 같은 조에 배정된 1,000m 준준결승에서 스타트 라인에 선 황대헌의 눈빛을 난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형들을 이기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대헌이는 또 넘어졌다. 막판 자리 싸움을 하던 도중에 결승선을 앞두고 임효준과 충돌해 비디오 판독 끝에 반칙 판정을 받고 말았다.

지금 대헌이의 상심이 얼마나 클지 난 짐작이 간다. 첫 출전이라고 하지만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서, 그것도 두 번이나 정상적인 레이스조차 못 해보고 퇴장한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기량만큼, 노력만큼 성과를 거두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올림픽은 그렇지 않다. 국내 팬들도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은퇴)라는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1,000m에서 준준결승 3위에 그쳤는데 2위 선수가 실격 처리 되면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김동성, 리자준(중국) 등 강호들과 맞붙었지만 레이스 도중 선두권 그룹이 한꺼번에 뒤엉켜 넘어진 덕에 1위로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전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안현수, 리자준, 안톤 오노(미국)와 한 조를 이뤘는데, 이 경기에서도 경기 막판까지 꼴찌로 힘겨운 레이스를 이어가다가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선두권 세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면서 출전에 의의를 뒀던 그는 호주의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대헌아, 올림픽이란 게 이런 거다. 행운과 불운은 누구에게 닥칠지 모른다. 다만 실수했다고, 메달을 못 땄다고 주저 앉지 말고 일어서야 기회는 또 온다. 아직 경기도 남아 있고, 다음 올림픽은 분명히 너의 것이다.

이정수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ㆍ2010년 밴쿠버 올림픽 2관왕

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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