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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든과 메스니를 긴장시킬 그녀, 송미호

입력
2014.11.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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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서울 청담동의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얼른 눈에 들어왔다. 사실 여성 재즈 어쿠스틱 베이시스트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튄다. 나아가 자신의 키보다 몹시 큰 어쿠스틱 베이스(일명 더블베이스)에서 나오는 비밥의 명곡 ‘튀니지의 밤’은 경이였다. 비밥의 두 영웅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와 맹렬한 연주와 겨뤘던 찰스 밍거스의 베이스를 그녀는 자신의 악기를 빌어 한껏 재현하고 있었다. 참 대단한 아가씨라고 생각했다. 유려하면서도 맥이 살아 뛰는 베이스 선율에 스스로 도취된 듯한 연주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송미호(37)가 또 뭔가를 했다. 첫 앨범을 낸 것이다. 첫 만남에서 “연주하다 죽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했던가.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과격한, 그래서 인상적이었던 그 말은 이제 하나의 실체가 됐다. 첫 음반 ‘아이덴티컬 마인드’에는 은근히 철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속뜻은 전혀 무겁지 않아요. 그냥 같은 마음 혹은 공감이라는 정도의 의미죠. 피아노와 통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수록곡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게 우선 인상적이다. 마치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과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라는 거물들의 듀오 작품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같은 유려함, 나아가 30대 여인들의 음악 같지 않은 낭만과 여유가 깃들어 있다. “들어본 사람은 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 음악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제목은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콘트라 베이스 연주자 송미호씨.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3)
콘트라 베이스 연주자 송미호씨.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3)

녹음은 9월 1, 2일 서울 압구정동 이레스튜디오에서 했다. “분위기도, 녹음 환경도 좋았어요.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거기서 다 했으니.” 네덜란드 유학파이자 동의방송대 교수인 오종대의 드럼이 따스하다. 오종대는 녹음 테크닉 부분에서 결정적인 조언까지 가외로 했다.

“저의 첫 음반이 겨울이란 계절에 너무 잘 어울리는 듯 해요. 특히 부모님께서 좋다고 해 너무 기쁩니다.” 부모로부터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다. 유학 갔다 오고 처음 뚜렷한 성과를 낸 거라 부모의 상찬이 유독 깊이 자리잡은 듯 하다. “존재감을 인정 받은 셈이랄까요.”

중앙대 가정교육과에 1996년 입학한 그는 3년 뒤 재즈 아카데미에 들어가더니 그 이듬해 동덕여대 음악과 1기생으로 적을 바꿨다. 원래는 하드록 혹은 헤비메탈계 음악의 베이스를 연주했던 그녀다. 그러다 인코그니토 등 펑키그룹의 음악을 통해 흑인 특유의 그루브 감을 몸으로 익혔다. 재즈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는 미국의 퓨전 밴드 트라이벌 테크에 빠져 그들을 카피하면서다. 송미호는 2004년 최세진 등 재즈 1세대와 알게 됐고 급기야 최세진 콰르텟의 일원이 됐다. 2005년에는 미국의 보스턴 음대로 옮겨 현지의 재즈를 익히기에 이른다. 그녀의 재즈가 더욱 유려해진 것은 학부를 마친 뒤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캐리비언 인터내셔널 크루즈의 선상 밴드(10인조 오케스트라)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송미호의 애장 악기는 네 개다. 체코산 어쿠스틱 베이스, 일렉트릭 베이스, 통베이스(통기타처럼 생긴 베이스) 그리고 일렉트릭 업라이트 베이스. 그러나 맨 마지막 것은 이번 앨범을 만드는 제작비의 일부로 들어갔다.

이 앨범에는 그보다 훨씬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이길주. “저보다 여섯 살 아래인데 버클리음대에서 만났습니다. 무리한 연습으로 7년여 동안 피아노를 못 쳤던 사람이에요.”

이길주는 아픈 마음으로 연주를 접고 재즈화성학 교재를 쓰는 등 교육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나름 열심이었다. 2011년부터 팟 캐스트에 ‘이길주의 재즈 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 뉴욕대에 재학 중이었던 송미호는 그 프로그램에서 ‘뉴욕에서 온 편지’라는 코너를 맡았고 내친 김에 이번 앨범을 같이 만든 것이다. “작년 5월 팟 캐스트에서 칼라 블레이의 듀오 앨범 ‘론스’를 뽑으면서 듀오 앨범 내자고 제의했어요.”

그러나 ‘론스’를 틀고는 사담이 이어져 잊혀진 채로 있던 꿈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 모두 청주 충청대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그 꿈이 다시 구체화했다. 2013년 3월 공저로 ‘화성학 재즈 인’을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실제 무대는 무시한, 기존의 이론적 화성학보다 매우 쉬운 실전 책으로 현장과 학생들에게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10년 재즈 경험의 고갱이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마음을 놓고 교육으로 돌아서려는데 어깨가 거의 옛날 수준으로 회복됐다. 간절한 소망으로 하나가 돼 만든 이 앨범에 그런 제목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콘트라 베이스 연주자 송미호씨.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3)
콘트라 베이스 연주자 송미호씨.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3)

그러나 송미호는 정작 그 앨범에 ‘음악적으로’ 냉정하다. “어떻게 보면 (실제 능력의) 100%, 200%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채 20%도 안 돼요.” 200%란 사람들이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재즈를 하자는 당초 바램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 미만이란 또 뭔가. “가시적 성과로 보자면 둘 다 이제 시작이라는 정도의 의미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디딤대 정도로 봐 달라는 말이다.

내친 김에 좀더 비판을 한다면? “이번 앨범으로 재즈와 대중성이란 문제를 두고 하던 고민이 조금 해소된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미학적으로 보자면 보다 깊이 있는 연주와 편곡이라 문제가 남아 있죠. 실험성과 대중성의 동시 추구라는 화두에서 보자면 10%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100%란? “실제의 제 연주는 감성, 지식, 들리는 것에 훨씬 못 미쳐요.” 더 이상 다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두 번째 앨범을 기대하기로 한다. 헤이든과 메스니가 긴장할.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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