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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써봤더니] 익명성 보장돼 마약 등 암시장서 지불수단으로 악용

입력
2017.11.18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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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공장부 ‘블록체인’ 기술에 찬사

참여자에 거래내역 전송, 공유

정부 통제 안 해도 위조 불가능

유통-물류-금융 등서 혁신 전망

#2

지구촌 단일 화폐는 요원

신용카드 초당 5000건 거래 처리

비트코인은 7건 밖에 처리 못해

채굴 난이도 오르면 수수료 올라

비트코인은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화폐가 될 것인가. 투기자본을 유혹하는 한낱 유행으로 자리매김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비트코인은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화폐가 될 것인가. 투기자본을 유혹하는 한낱 유행으로 자리매김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혁신인가 거품인가.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전망이 엇갈렸다. 중앙관리기구 없는 가상화폐의 파급력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의 화폐를 대체할 ‘전세계 단일 화폐’라는 장밋빛 미래는 요원하다. 어떤 화폐보다 높은 가치를 자랑하며 각광받는 화폐가 이토록 쓸모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탈중앙화의 혁신, 블록체인

비트코인에 개발자와 지지자들이 보낸 찬사는 사실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발상의 암호보안기술인 블록체인은 쉽게 말하면 일종의 공공장부다. 여러 플랫폼에 응용될 수 있는데, 비트코인 체제에서는 정부나 금융기관의 검증, 통제를 대체해 안전한 화폐거래를 보장한다. 실물 없이 데이터로만 이루어진 가상의 화폐로 물건을 사고 팔 때, 복제해 이중 결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식이다. 곳곳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10분마다 새로운 거래내역 블록으로 만들어져 줄기줄기 엮여 끊임없이 공공장부가 갱신되고, 이를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에게 전송해 공유한다. 전세계 이용자가 장부를 공유하니 누군가 거래 내역을 위조할 수가 없다. 해킹도 의미가 없다. 일부 서버가 파괴되면 다른 곳에서 복사해 오면 그만이다. 정부, 금융기관, 중개인 등이 끼어들 이유도 없다. 중앙관리기구 없이 보안성이 유지된다는 이점은 지지자들을 매료시킬 만하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증, 보안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중고차를 매매할 때 제조사, 보험사, 공업사 등이 보유한 사고내역, 수리이력, 주행거리 등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저장 공유하면 조작이나 위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내년 3월까지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로 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중국 월마트와 IBM은 작년부터 중국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유통ㆍ물류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소비자는 육류의 생산지, 도축 및 유통까지 전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JP모건체이스, 비자, 마스터카드, 블랙록 등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과 세계경제포럼(WEF)는 올해까지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금융거래 시스템을 구축할 것으로 내다봤다. WEF는 2023년에는 전세계 정부가 블록체인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2027년 전 세계 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앞으로 모든 실물 자산이 디지털화되고 분산 저장될 때 최적화한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라며 “국내에서도 저작권 권리를 블록체인으로 하고 저작권료는 비트코인으로 받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남다른 속성 즉 분산화, 익명성 등에 먼저 눈을 뜬 것은 지하경제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비트코인의 남다른 속성 즉 분산화, 익명성 등에 먼저 눈을 뜬 것은 지하경제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블랙마켓 지불수단이 되다

하지만 혁신의 성과는 마약, 불법무기 매매 등 암시장 거래에서 먼저 꽃을 피웠다. 다른 결제수단과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계좌의 주소인 공개키와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개인키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고, 이외에 일체의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지하경제에서 악용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불법 마약거래 사이트인 ‘실크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2011년부터 마약 등 각종 물품 거래를 중개한 실크로드는 2013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폐쇄되기까지 약 120만 건의 거래 중개로 950만BTC(당시 기준 약 1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1월에는 미국 법무부가 비트코인 거래 회사인 비트인스턴트의 창업자인 찰리 쉬렘(24)과 온라인 마약거래업자인 로버트 페엘라(52)를 돈세탁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세탁을 원하는 이용자가 현금을 주면 마약거래업자가 비트인스턴트에서 비트코인을 사 돈을 세탁한 뒤 되돌려 주었다.

물론 추적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거래내역이 모든 참여자에게 배포되니 과거의 모든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또 각 거래들은 사용자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와 연계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비트코인 거래소는 다수가 비트코인 출금을 은행계좌에서 하도록 하고 있어, 환전 시 은행계좌를 통해 사용자를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트코인 범죄 사건이 터지면 연루자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거래 당시에는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지만, 내 비트코인 지갑이 은행계좌와 엮여 있는 만큼 개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한 순간”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IP 주소를 감추는 추가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수사 공조가 어려운 해외 서버나 거래소를 이용하면 신원 확인이 어려워진다. 어준선 대표는 “비트코인을 현금화할 때 어느 거래소든 본인 확인을 거치는 만큼, 글로벌 수사 공조를 하면 이용자를 거의 100% 추적할 수 있지만 수사 공조가 안 되는 국가가 일부 있다”고 말했다.

단일 화폐 현실화 가능성은

기존의 화폐를 전면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더 어둡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보다 높은 가치변동성이다. 홍기훈 교수는 “현재로선 비트코인 값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이다 보니 진지하게 화폐로 검토되기 어렵다”며 “가치가 들쑥날쑥 하면서도 계속 오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디플레이션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즉 화폐가치가 떨어져야 사람들이 그 돈을 쓰려 하겠죠. 반대로 지금 보유한 비트코인으로 오늘은 커피 한 잔을, 내일이면 두 잔을 살 수 있다고 하면 그걸 모두 갖고 있지 누가 화폐로 사용하겠어요. 한편으로는 값이 언제 폭락할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니 차라리 원화로 환전해 갖고 있겠다고 생각하는 등 불안정한 자산이 되는 거죠.”

기술적으로 거래 승인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도 근본적 한계다. 블록체인 형성에 걸리는 시간이 10분여로 만만치 않기 때문인데, 현재로선 즉시 거래에 부적합한 화폐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신용카드 결제수단의 경우 초당 2,000~5,000건의 거래 처리 능력이 있는데 비트코인은 분산시스템이라 이론적으로 1초에 7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며 “즉시 거래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적당치 않아 만능 거래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채굴 난이도는 계속 오르고 있어 앞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면 거래 수수료가 크게 오를 우려도 있다. 또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취약계층에게 오히려 정보격차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제약점으로 지적된다.

긴 승인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공공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오프체인’ 방식으로 하는 거래, 즉 거래소 내부장부에만 기록을 남기는 거래소 등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다른 보안, 조작 및 사기, 거래소 폐쇄 문제 등이 나타난다. 블록체인 덕분에 피해갔던 보안과 해킹 문제가, 오프체인 방식을 택하는 순간 다시 부각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한국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 공동창업자로 비트코인을 널리 알리고 나선 당사자면서도 “기존 거래수단을 모두 대체하는 만능열쇠를 상상하는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스위스, 일본 등에서 비트코인이 쓰인 사례들은 “유행처럼 지나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화폐로서는 한계를 지니지만, 제한적인 거래수단이나 금과 같은 금융자산으로 기능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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