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소유주만 비용 떠안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시행, 규제 비현실적
그린벨트는 '개발 유보지'… 투기는 과세로 막을 수 있어
고속도로를 타고 번잡한 도심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나타나는 탁 트인 녹지.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빌딩과 아파트로 송곳 하나 꼽을 틈 없이 빽빽한 도심지 주변에 자리해 번잡한 국토의 ‘숨통을 틔워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린벨트는 지정 과정에서의 공론화 부재, 땅 소유주들의 재산권 침해 등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도심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환경을 보전한다는 순기능 덕에 43년간 존속했다. 하지만 그 동안 그린벨트 때문에 ‘숨통이 막힌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그린벨트 지정 이전부터 그곳에 땅을 보유해온 사람들은 낡은 집을 마음대로 개ㆍ보수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길 건너 비(非)그린벨트 지역의 땅값이 자기 땅 가격의 몇 배 넘게 오르는 것을 보며 울분을 삭여야 했다. 이들은 개발 제한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린벨트로 혜택 보는 사람과 피해 보는 사람이 따로라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린벨트 내 땅을 소유한 사람들의 모임인 ‘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운동본부’ 인터넷 카페 운영자 목진일(47ㆍ공인중개사)씨는 그린벨트가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보호와 보상은 전혀 없이 땅 소유주에게 피해와 고통만을 강요하는 악법”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개인의 재산권을 이 정도로 제한하는 것은 대들면 잡혀 가던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자기 땅도 아닌 인근에 노인 병원이 들어선다고만 해도 극렬히 반대하는 요즘 분위기였다면 그린벨트 지정이 가능하기나 했을까요.” 그가 보기에 정부의 태도는 43년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린벨트라는 이름부터 잘못됐다”는 목씨는 그린벨트의 실상은 정부 필요에 따라 개발하거나, 개발을 잠시 유보할 수 있는 ‘개발유보지’라고 말한다. “정부는 많아야 공시지가의 2배 정도 되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린벨트 땅을 수용한 뒤 정책 목적에 따라 임대주택이나 관공서 등을 짓곤 합니다. 길 하나 건너 (그린벨트로 지정되지 않은)옆 동네와 땅값 차이가 많게는 10배 이상 나는 상황에서 원주민들은 타지에서 집 한 채도 구하지 못할 푼돈만 보상 받은 채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농사 등 극히 제한된 용도로만 그린벨트를 사용하게 하는 비현실적 규제 탓에 땅 소유자들이 생계를 위해 무허가 건물을 세우거나 창고를 운영하다 범법자가 되는 사례만 양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린벨트 제도 자체에서 오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주 도심과 위성도시 사이에 그린벨트라는 벽이 쳐지면서 도심과 위성도시를 오가야 하는 비용이 높아지고 도심의 지가는 더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목씨가 그린벨트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도시가 팽창하던 산업화 시대에 도시의 무차별한 확산을 완화하고 숲이나 전답을 보존한 장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기능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게 목씨의 주장이다. 국민 대다수가 그린벨트의 ‘긍정적 외부효과’를 누리는 사이 비용은 땅 소유주들이 전부 떠안았다는 얘기다. 그가 보기에 영국의 그린벨트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혜택과 비용 지불이 일치했기 때문. 목씨는 “영국은 그린벨트 지정 당시 이해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의견 수렴을 거친 뒤 현실적인 보상을 해줬다”면서 “일본은 우리처럼 제대로 된 보상 없이 그린벨트를 강제 도입했다가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 때문에 시행 10여년 만에 폐지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그린벨트 규제는 조금씩 완화됐다. 최근에도 국토교통부는 그린벨트 구역 내 캠핑장이나 야구장 같은 실외체육시설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목씨는 그러나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라고 꼬집었다. 땅 소유주 대부분이 캠핑장이나 경기장 설립이 불가능한 좁은 땅덩이만 가진데다 시설을 올릴 자본도 없다는 것이다.
그린벨트가 전면 해제되면 환경이 파괴되고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 거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는 ‘기우’라고 일축했다. “그린벨트에서 개발 가능한 토지는 10~2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는 군사지역, 상수도보호구역, 농업진흥구역 등 다른 규제로 개발 제한이 돼 있기 때문에 녹지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린벨트를 해제한다고 해서 환경이 파괴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부동산 투기 우려에 대해선 “외부인의 땅 매매에 대해 토지 보유연한을 기준으로 강도 높게 과세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린벨트 완화에 반대하는 일부 환경단체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타인의 그린벨트에 무임승차하며 그저 보고 즐기려는 이기적 태도”라는 것. 지금같이 그린벨트 땅 소유자에게만 피해를 돌리는 식으로는 형평성도 없고 비(非)그린벨트 지역의 환경 파괴만 부추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 그린벨트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국개발제한구역국민운동본부는 이달 안에 사단법인을 만들어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그린벨트 문제를 자기 세대에서 꼭 끝내겠다’는 70대 노인분들이 운동본부의 주력”이라고 목씨는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김명선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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