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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7.12.04 17:25
수정 : 2017.12.04 18:33

[이계성 칼럼] ‘거만한’ 화성-15형

등록 : 2017.12.04 17:25
수정 : 2017.12.04 18:33

美 본토 타격 ICBM 주장하나 거리만 충족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넘어야 할 벽 남아

과대ㆍ과소 평가 말고 냉철하게 파악해야

1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열린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성공 자축 불꽃놀이 장면. 연합뉴스

주말 골퍼들이 즐겨 쓰는 속어 가운데 ‘거만한 샷’이란 게 있다. 공을 날렸는데 방향은 크게 빗나가고 거리만 맞았을 때 하는 말이다.

반대로 방향은 좋았는데 거리가 맞지 않은 경우는 ‘방만한 샷’이라고 한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화성-15형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미국 본토 어디든 타격 가능한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을 때 언뜻 이 ‘거만한 샷’이란 말이 떠올랐다.

북한 정부의 성명 등을 종합하면 화성-15형은 수직에 가까운 최대 고각으로 발사돼 정점 고도 4,475㎞까지 솟아올랐고 53분에 걸쳐 950㎞를 비행했다. 이론상 정상 각도로 발사됐다면 1만3,000㎞ 안팎을 날아가 워싱턴 등 미국 본토 어디에든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일부의 관측대로 러시아가 1960년대에 개발해 80년대까지 ICBM에 사용했던 RD 계열 엔진이 화성-15형에 사용된 게 사실이라면 미국 본토 도달 거리는 문제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화성-15형은 대기권 재진입과 종말 유도기술, 핵탄두 소형화 등에서 성공했는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북한은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재진입 기술을 검증했다고 주장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고각 발사보다 정상 각도 발사 시의 재진입 기술은 훨씬 어려운데, 고각 발사된 이번 화성-15형도 탄두가 재진입 때 부서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국 백악관을 타격할 수 있는 ICBM발사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허풍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북한은 ICBM 요건 중 거리만 충족한, ‘거만한’ ICBM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ㆍ미사일 개발을 해오면서 자신들이 실제 이룬 성취보다 항상 과장되게 포장해왔다. 그런 뒤 시간을 두고 기술적 수준을 높이곤 했다. 마치 공을 툭 차놓고 따라가 붙는 축구 선수의 드리블 같다. ICMB 재진입 기술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할지 모른다. 김정은은 엊그제 화성-15형 발사에 쓰인 9축 이동발사차량의 타이어를 생산한 ‘압록강타이어공장’을 시찰하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해나갈 때 뚫지 못할 난관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북한이라도 혁명정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술의 ‘넘사벽’은 있을 것이다. ICBM재진입과 같은 기술이 바로 그런 분야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화성-15형 발사 후 두 차례나 전화통화를 갖고 긴밀하게 협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화성-15형을 ‘ICBM급’으로 규정하며 아직 미완성임을 부각시켰고, 백악관은 그냥 ICBM 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설정한 ‘ICBM 완성’이라는 레드 라인에 이르지 않았음을 들어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보다 강력한 대북 압박 조치의 명분을 찾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이뤘다며 연일 군중집회와 무도회를 여는 등 자축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는 북한의 속뜻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핵 무력을 완성한 만큼 더 이상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필요 없이 협상의 단계로 나오겠다는 의미라면 그리 나쁠 게 없다. 그러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협상을 하려는 밑자락 깔기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어떤 경우든 액면대로 북한의 핵무력 완성 수준을 과대평가해주면 그에 따라 치러야 할 비용은 더 커진다. 북한이 성취한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능력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 희망적 사고나 다른 의도가 끼여 들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대화와 협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 봉쇄하고 옥죄는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 김정은 체제의 성격상 자진 굴복은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군사적 공격이나 내부 붕괴 등일 텐데 과연 우리가 그런 결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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