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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가즈오 이시구로 “아내의 가사전담 덕에 성공했다”

입력
2017.10.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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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지난 5일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지난 5일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쓰기 위해 오전 9시에서 오후 10시30분까지 작업에 몰두하는 생활을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반복했다. 식사도 점심 1시간, 저녁에 2시간만 투자했다. 전화를 받거나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로나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전담해준 덕분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많은 양을 작업했을 뿐만 아니라 내 소설세계를 더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201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지난 2014년 영국 가디언지에 소설 집필 비결을 공개했다. 비결은 바로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오직 창작에만 집중해 198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약 한 달 만에 완성했다. 그의 집중 뒤에는 ‘아내의 가사전담’ 이 있었다.

아내의 가사전담이 만든 명작들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즉 아내의 가사전담 덕에 명작을 쓸 수 있었던 남성작가는 이시구로만이 아니다. ‘전쟁과 평화’를 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아내 소피아의 가사노동에 힘입어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소피아는 집안일은 물론 재정관리, 운전 등을 했고 톨스토이의 작품 전체를 타이핑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13명의 아이를 기르는 것도 소피아의 몫이었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집필하던 1895년 소피아의 일기에 삶의 고단함을 토로한 대목이 있다. “남편이 채식을 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밥상을 차려야 한다. 즉, 일을 두 번 한다는 뜻이다. 그가 ‘사랑과 선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곧 가족에게 무관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가정과 관련된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소설 ‘롤리타’를 쓴 러시아 출신 작가 블라드미르 나보코프의 아내 베라도 남편을 자잘한 일에서 해방시켰다. 나보코프의 전기작가 스테이시 시프에 따르면 베라는 청소와 요리, 개인 비서역할 외에 외식을 할 때 남편이 먹을 요리를 먼저 맛보는 일까지 한 ‘숨은 조력자’ 였다. 이들 외에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와 마크 트웨인, 시인 T.S. 엘리엇 등도 아내의 가사노동 덕분에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림자 노동’이 벌어준 시간이라는 가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은 지난해 5월 한 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글을 쓸 시간을 찾았냐’고 질문하자 ‘집안일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조앤 롤링 트위터 캡쳐.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은 지난해 5월 한 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글을 쓸 시간을 찾았냐’고 질문하자 ‘집안일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조앤 롤링 트위터 캡쳐.

창작을 위한 ‘해방’ 이 필요한 것은 남성작가 뿐만이 아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은 지난해 5월 한 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글을 쓸 시간을 찾았냐”고 묻자 “집안일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싱글맘인 롤링은 2001년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도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동시에 소설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림자 노동’인 가사노동의 금전적 가치는 상당하다. 200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전업주부, 연봉을 찾아라’라는 연구를 통해 12시간 동안 살림을 하며 초등학교 1학년 딸과 3세 아들을 키우는 37세 전업주부의 월급을 약 371만원으로 추산했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4,452만원이다. 미국의 구직 사이트 샐러리닷컴 역시 지난해 자체조사를 통해 1주일에 92시간 일하는 가정주부의 연봉을 약 1억6,000만원(14만3,000달러)이라고 밝혔다.

가사노동이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기준 OECD 회원국 남성은 평균 2.3시간, 여성은 평균 4.6시간을 가사노동에 쓴다. 한국에서는 여성이 평균 3.8시간, 남성이 45분 동안 가사노동을 한다. 가사노동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다른 곳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부부 중 한 명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면 그 시간에 해당하는 가치를 상대에게 벌어주는 셈이다.

“애덤 스미스는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의 이익추구 욕구 덕분에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어머니 마거릿 더글라스가 저녁식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스웨덴 경제학자 카트리네 마르살의 지적이다. 그는 주류 경제학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드는 ‘가사노동’을 그림자 취급하면서 성별 노동 불평등 문제가 심화됐다고 봤다. 이시구로의 소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우리의 삶에 모두 숨은 조력자의 귀중한 노동이 들어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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