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무단출입한다고 자랑
영애 이름 팔아 재벌들 돈 뜯고
손주 과자값으로 100만원 수표를
朴 권세 업고 경찰국장에게도 호통
70년대 9억원대 건물 매입하기도”
“최씨 재산 국고 환수해야 한다 여론 비등”
“초라한 원자경 교주였던 이가 지금은 자신이 근혜양과 함께 일한다며, 청와대를 무단 출입한다고 했다. 그가 타고 온 짚차는 바로 근혜 양의 것이었다.”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최태민씨가 과거 청와대를 무단 출입한 일을 자랑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사이비 교주였던 최씨가 돌연 거물급 인사로 대우 받으며 도시자, 경찰국장, 재벌 등에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재벌에게 돈을 걷어 건물을 사들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최씨의 딸이자 ‘비선실세 국정농단’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에게 제기된 혐의도 청와대 행정관의 차량을 이용하고, 검문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으며, 재벌 기업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벌였다는 점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은 최씨 부녀가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꼭 닮은꼴의 국기문란 행각을 반복한 셈이다.
이 기록은 사이비종교 비판, 고발에 앞장 선 이단연구가 탁명환(1937∼1994)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집필해 월간 ‘현대종교’ 1988년 4~6월호에 총 3회에 걸쳐 게재한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 제하의 원고다. 부제는 ‘대해부: 구국선교단, 구국십자군’이다. 탁 소장은 1973년 5월 한 사이비 교단에서 “만병통치”를 운운하며 낸 광고를 보고 대전 보문산 골짜기로 찾아가 최태민씨를 처음 만났고 이를 기록했다.
당시 최씨는 칙사, 원자경을 자처하며 “벽에 둥근 원을 색색으로 그려놓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나무 자비 조화불’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면 만병통치하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탁 소장의 기억이다. 이후 최씨가 먼저 만남을 청하기도 했다. 1974년 서울 이대 앞 제과점에서 탁 소장을 만난 최씨는 자신이 “영세계 칙사관의 대사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돌연 목사이자 ‘대한구국십자군의 총재’를 자처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듬해인 1975년이다. 보도를 본 탁 소장이 전화를 걸어 “혹시 원자경씨 아니냐”고 묻자, 당황한 최씨가 “지금 좀 만나자”고 했다. 곧 이어 약속 장소에 “위풍당당하고, 야무지고, 건강한 모습으로 뭔가 자신감에 넘치는” 최씨가 나타나 당시 영애(令愛)이던 박 대통령과의 친분, 청와대 무단출입 사실 등을 자랑했다는 것이다.
신학교 문턱도 밟지 않았지만 최씨는 ‘목사’로 승승장구했다. 탁 소장은 “(선교단의)멸공단합대회 때마다 박근혜양은 빠짐없이 참석해 모습을 드러냈고 각급 기관장들은 물론 고위공무원, 국회의원들이 모두 들러리를 섰다”며 “그것이 후일 최태민씨가 도지사나 경찰국장에게 전화로 호통을 칠 정도로 세도를 부리는 계기가 됐다”고 썼다.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국십자군의 활동을 일부 묵인한 것은 반공교육과 기독교계 통제를 위해서였다고 탁 소장은 분석했다. 구국십자군은 목사들에게 멸공연수강좌를 하고, 집총군사훈련까지 시켰다. 이렇게 영향력을 키운 최씨가 재벌들에게 불법모금을 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다이알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 ‘명예총재인 영애께서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협조부탁한다’고 하면, 재벌들은 모두 꺼벅 죽는 시늉까지 했다. 최씨는 그 엄청난 돈을 챙겨 아현동 고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 건물(당시 9억원 상당)을 매입했다.”
하지만 정작 최씨가 10ㆍ26 이후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는 전부 박근혜 양이 아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책임을 떠다 밀어버렸다”는 내용도 기록에 담겼다. 당시 세간에는 “최씨가 가끔 손주들에게 과자 값이라고 쥐어 주는 돈이 100만원짜리 수표였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했다. 탁 소장은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비리가 밝혀져야 하며, 그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최씨의 정체도 살필 겨를 없이 막강한 배경이 뒤에 있다는 말에 허겁지겁 뛰어들어 놀아난 성직자들도 회개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민씨가 당시 청와대를 자유롭게 오갔다는 의혹이 제기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연 대선 예비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는 ‘최 목사가 박 후보의 이름을 팔아 비리를 저지르고 청와대를 무상출입해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사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경호실 비서실이 있고 출입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 무상출입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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