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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최진실의 아이들, 이젠 그만 봤으면

입력
2015.06.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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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처음 나왔던 2006년은, MBC가 그래도 참신하고 과감한 기획력을 자주 보여줬던 때였다.

2006년 휴먼다큐 중 ‘너는 내 운명’ 편을 처음 보면서 그야말로 끊임 없이 울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배우자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남자 이야기였다. 9년 전 프로그램인데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휴먼 다큐’는 매년 4~5편의 특집 다큐 시리즈로 찾아왔다.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편을 통해 알려진 윤선아씨는 희귀병을 이겨내고 아기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줬다. 시력을 잃어가는 희귀병에 걸린 개그맨 이동우씨의 사연도 이 시리즈를 통해 알려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의 운명과 싸우며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은 방송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다큐 시리즈의 이미지는 ‘죽음’ ‘가족’ ‘사랑’ 같은 단어가 얽혀져 묵직하고 진지한 질문을 해 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휴먼다큐 사랑’을 잘 챙겨보지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뭐 개인적인 이유가 컸다. 아이 키우느라 TV 보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1~2년 간은 ‘아픈 어른’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애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TV에 아픈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는 건 고문처럼 느껴진다.

휴먼다큐사람2015 ‘진실이 엄마Ⅱ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편. MBC홈페이지
휴먼다큐사람2015 ‘진실이 엄마Ⅱ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편. MBC홈페이지

그런 맥락에서, 지난주 방영된 ‘진실이 엄마Ⅱ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편은 보는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미 ‘휴먼다큐 사랑’ 2011년 시리즈에서 ‘진실이 엄마’ 편이 방영된 적이 있다. 2008년 고(故) 최진실이 충격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 남겨진 아이들과 외할머니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편 제목이 ‘진실이 엄마Ⅱ’인 이유다.

환희와 준희는 2011년 ‘진실이 엄마’가 방영된 이후 2013년 아빠 조성민까지 세상을 떠나는 ‘사고’를 겪었다. 2010년엔 외삼촌 최진영도 사망했다. 아이 티를 벗어가는 준희가 담담하게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을 나는 세 번이나 겪은 것 아니냐”고 할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게다가 준희한테 인터넷 쪽지로 악의적인 내용을 보낸 친구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준희는 “엄마도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 했던 건데, 그런 글들을 보면 나는 어떻겠어요”라고 했다.

제작진이 어떤 의도로 이번 편을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보는 내내 어떤 죄책감을 느꼈다. 최진실의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죄책감. TV에 나오면 보고 싶어한다는 죄책감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최진실의 아주 열렬한 팬이었고, 그녀가 시끌벅적하게 결혼하고, 이혼하고, 무너지고, 재기하는 과정을 모두 관심 있게 지켜봤다. 2008년 가을 어느 아침에 TV 뉴스에서 최진실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는 정말이지 잘 아는 언니가 죽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故최진실이 남기고 간 두 아이들 환희(위쪽)와 준희. 어느새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어 있었다.
故최진실이 남기고 간 두 아이들 환희(위쪽)와 준희. 어느새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진실이 가고 난 다음에도, 사실 난 여전히 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컸는지가 궁금하다. 환희의 예쁘장한 얼굴에서 최진실의 데뷔 시절 앳된 눈웃음이 떠오르고, 준희의 얼굴선과 체격에서 요미우리에 막 입단한 어린 조성민의 에너지가 떠오른다.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피가 무섭네 무서워’라고 감탄했고, 신기하면서 재미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죄책감이 든다.

이번 다큐 도중에 준희가 엄마를 대신해 한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사춘기 준희는 시상식 사회를 본 탤런트 김희선과 기념 사진을 찍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김희선이 준희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와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김희선과 나이가 비슷한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릴 때 최진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최진실처럼 예뻐졌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고, 이제는 엄마가 돼서 육아 전쟁에 뛰어들었다. 환희와 준희라는,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이 나름대로 씩씩하게 잘 사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편을 보면서 정말이지 MBC에 찾아가서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저 아이들이 더 이상 TV엔 안 나오게 해 달라고.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너무 어린 나이 때부터 유명해진 아이들이 왜 자신들의 성장과정까지 알려야 하나. 환희와 준희가 모두 성인이 된 이후에, 본인들이 원한다면, 그때 방송에 또 나와도 늦지 않다.

올해 ‘휴먼다큐 사랑’ 시리즈는 총 4편 중 3편이 유명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故) 최진실의 가족이 그 중 하나고,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우나리 부부, 그리고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의 가족 이야기다. 설마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유명인 가족의 생활을 엿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9년 전 충격적일 정도로 진지했던 이 시리즈가, 왠지 색깔이 변한 듯한 느낌도 드는 건, 나만 그런 건가.

<휴먼다큐 사랑 2015>

2015년 5월 4일/ 11일/ 18일/ 25일/ 6월 1일 밤 11시 15분 방영 (현재 방송 종료). 매년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치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6월 1일에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의 ‘진실이 엄마Ⅱ’ 편은 시청률 6.4%(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SBS의 힐링캠프(3.4%), KBS의 안녕하세요(5.1%) 등 예능 프로그램을 제쳤다.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편은 시청률 5.3%였다.

2) 휴먼다큐 사랑 2015년 시리즈에는 배우들도 나레이션에 참여했다. 최진실 편은 김유정, 안현수 편은 이유리가 나레이션을 했다.

3) 휴먼다큐 사랑 2014 때는 4편이 모두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2013년 때는 ‘해나의 기적’ 편에서 기도(숨관) 없이 태어났지만 씩씩하고 예쁘게 커가는 해나의 이야기가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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