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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ㆍ감] 다시 시작되는 고대사 논쟁 관전법

입력
2016.03.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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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열린 ‘한국 상고사의 쟁점’ 토론회에서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열린 ‘한국 상고사의 쟁점’ 토론회에서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기자, 쓸 수 있겠어요?” “욕 한번 시원하게 먹을 준비는 됐나 보네요.”

낙랑군 비정 문제를 다룬 기사(한국일보 3월 4일자 23면 ‘“낙랑군 평양 위치설 연구를 식민사학 매도” 젊은 사학자들 뿔났다’)를 쓰려고 취재하던 중 들었던 학계 전문가들의 농담이었다. “욕 먹으면 오래 산다 하니 이 참에 명줄 좀 늘려보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욕설은 없었으니, 불행히도 명줄은 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속 시원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제법 받았으니 명줄은 되레 짧아질 것 같다.

비판 메일 대부분은 정중했다. ‘쓰신 기사에 대한 소감’ 혹은 ‘저의 반론’ 같은 제목 아래 자기가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자기 생각에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당신의 기사가 어디서 잘못됐는지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전직 장관 한 분은, 교수 시절 자신의 학문적 경험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감사했다. 구체적으로 반박하고픈 메일도 몇몇 있었지만, 입장을 떠나 존중할 수 있는 수준의 얘기들이라 싶어 그만뒀다.

이 때문에 오히려 부각되는 건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이랄 수 있는 이덕일의 서술 전략에 대한 아쉬움이다. 인터넷 악플러도 아닌데 ‘매국의 역사학’ ‘한국사학계의 이완용’ ‘조선총독부의 사생아’ ‘한국사를 난도질 했다’ 등의 자극적 표현을 굳이 책에다 써놔야 할까.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 바뀌는 건 책 제목과 가격, 그리고 센세이셔널한 비난 표현 뿐”이라는 비아냥이 부메랑처럼 되돌아 간다. 더구나 ‘정조 독살설’‘10만 양병설 진위론’ 등에 대해 내놓은 이덕일의 거친 주장은 안대회(성균관대)ㆍ오항녕(전주대)ㆍ정병설(서울대) 등에게 모두 다 깨졌다.

고대사에서도 반박이 시작됐다. 김현구 고려대 교수의 명예훼손 소송을 시작으로, 계간지 역사비평은 2016년 봄호에서는 이덕일을 ‘사이비 역사학’이라 비판했다. 한국고대사학회도 ‘고대사 시민강좌’를 시작했다.

이번엔 동북아역사재단이 22일 ‘왕검성과 한군현’을 주제로 상고사 토론회를 연다.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 문제를 두고 조법종(우석대)이 ‘고조선 왕검성 위치 논의와 쟁점’을, 박성용(인하대)이 ‘한나라 군사작전으로 본 위만 조선 왕검성 위치 고찰’을 발표한다. 이어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 위치를 설정 문제와 관련해 정인성(영남대)의 ‘일제강점기 토성리 토성 발굴 성과의 재검토’, 복기대(인하대)의 ‘한군현의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의 비교’ 발표가 이어진다. 분기별로 한차례씩 올해 모두 네 차례의 토론회가 열린다.

정치적 분위기와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재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재야 사학’이라는 영역을 끌어안으려 드는 셈이다. 사실 이 논쟁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관련 논문 한ㆍ두편만 찾아보면 양측 주장의 골격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관전 포인트는 하나다. 딴 소리 하지 않고, 상대 비판에 얼마나 충실하게 답변하느냐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의 판별법이다.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지금 현재 그게 최선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진짜 자부심 넘치는 이들의 자세”라던 어떤 학자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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