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21 14:00
수정 : 2017.03.21 14:00

[애니북스토리] 개를 버리는 사람은 사람도 버린다

등록 : 2017.03.21 14:00
수정 : 2017.03.21 14:00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식 때 선물 받은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가 낳은 새끼들을 안고 있다. 연합뉴스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4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끼 백구 두 마리를 안고 청와대에 입성할 때 썼던 신문 칼럼을 꺼내 읽었다.

동네 주민이 선물했다는 강아지를 안고 웃는 모습에 유기견을 입양해서 청와대에서 살겠다는 공약은 물 건너간 것인지, 안고 있는 진돗개 대부분이 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아는지 물었었다. 불안한 눈빛의 어린 새끼들이 어미젖은 뗐는지, 앞으로 행복할지 걱정하는 글을 썼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동물단체는 진돗개 아홉 마리를 청와대에 두고 간 박 전 대통령을 동물 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그런데 탄핵 정국에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동물 이슈에 몇몇 언론이 가십성으로 다루는 모습에 나는 더 분개했다. 인간문제는 무겁고 중대하고, 동물문제는 가볍고 사소한가. 동물을 버리고 간 사람이나 그걸 다루는 미디어나 생명의식 수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사실 이번 사건은 현재 한국의 반려동물 문제와 관련한 여러 이슈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요한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선물로 받은 진돗개를 중성화 수술 안 시키고 밖에서 키우다가 이사 가면서 개를 버린 것’이다. 살펴보면 생명을 선물로 주고받는 문제(물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도 백악관 입성 기념으로 개를 선물 받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성화 수술을 안 시켜서 개를 양산한 문제(‘음식혁명’의 저자 존 로빈스는 안락사 당하는 유기동물에 대해 알게 된 후 중성화된 동물이 더 귀엽다고 말했다), 선물 받은 개가 한배 새끼라면 근친 교배의 문제, 반려동물을 밖에서 교감 없이 키운 문제, 동물을 홍보의 도구로 이용한 문제, 이사를 핑계로 동물을 유기한 문제(2010년 동물자유연대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개를 버리는 이유는 1위 배변, 짖음 34%, 2위 이사 27%였다.) 등이다.

한국에서 진돗개는 반려견과 식용견의 경계에 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게다가 진돗개는 한국에서 반려견과 식용견의 경계에 있다. 청와대에서 살았던 개라는 프리미엄이 붙었으니 식용견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혈통을 보존하는 곳으로 간다니 이번에는 번식견이 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번식견이 될 거라는 문제제기에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한국의 반려동물 산업이 얼마나 잔인한지 모르는 속 편한 소리이다.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하는 몇 가지 주장이 있다. 가장 흔한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개와 고양이를 최악의 환경에서 키우는 애니멀호더, 투견, 사냥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고, 심지어 경외한다고 말한다. 좋아한다는 것이 책임지는 것임을 모르는 부류이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재자 히틀러도 애견인이었고, 굉장히 높은 수준의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

다만 ‘개를 버리는 사람은 사람도 버린다’는 말에는 일정부분 동의한다. 버린다는 것은 일방적인 관계의 단절이다. 관계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자신만 소중한 사람은 대상이 누구든 관계의 결말이 비슷하다. 우리는 지난 4년간 국민의 생명을 지키라는 의무를 저버린 대통령의 모습을 여러 번 보지 않았나. 미국의 저널리스트 킴 캐빈은 그의 책 ‘72시간’에 “가족인 개를 포기하는 순간 부모형제도 포기하게 될 것 같다”고 썼다. 개를 버린다면 사람도 버릴 수 있음을,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자각이다.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인간 개를 만나다’에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경우에든 개를 키우는 것이 개를 키우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인간이 개를 사랑하는 것보다 개가 인간을 더 사랑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윤리의식을 가진 이성적 존재이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면에서는 다른 동물보다 그다지 나을 것이 없다.

개와의 관계는 분명 도덕적 의무를 동반한다. 저자는 스키여행을 갔다가 저자를 유난하게 따르는 유기견 행색의 사냥개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주인이 있었다. 여행지를 떠나는 날 자기를 두고 갈까 흥분하는 개를 두고 올 수가 없어서 주인에게 개를 팔라고 하자 주인은 단숨에 ‘10실링’이라고 내뱉는다. 저자에게 그 말은 욕으로 들렸다. 자신을 버리고 여행자를 따라 가려는 개에 대한 비난. 아무 책임도 하지 않은 주인도 개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싫었나 보다.

인간은 이렇게 끝까지 이기적이다. 청와대에서 쫓겨난 개들이 평범한 반려견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켜줄 수 있을까.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인간 개를 만나다’, 콘라트 로렌츠,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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