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국회인턴 24시… 정치 입문 지름길? 열정페이 희생양?

입력
2015.02.25 20:00
0 0

누가 20ㆍ30대를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했나.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근거로 낮은 투표율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그들의 환경이 곧잘 거론되지만 이는 선입견이나 편견일 수 있다. 과거‘386세대’처럼 짱돌을 들고 권력에 맞서진 않지만 21세기 청년들은 SNS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과 방식만 다를뿐 어쩌면 과거보다 더 열렬하고 즉각적으로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24일 국회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는 20ㆍ30대 정책인턴 3인을 만났다. 온라인 공간을 벗어나 현실정치영역의 민낯을 제대로 보겠다고 뛰어든 청년들이다. 정치에 큰 뜻을 품거나 혹은 우연한 기회에 의원실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한달에 120만원, ‘열정페이’로 비쳐질 수 있는 임금을 받고 의원 일정 체크부터 홈페이지 관리, 언론스크랩에서 입법활동 보좌, 지역 챙기기까지 가장 넓은 반경에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돕는다. 하지만 이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여의도 의원회관 입성(?) 스토리와 인턴 활동기, 이들이 바라보는 정치는 어떤 모습인지를 들어봤다.

아이디어통 역할 김상민 의원실 박형진 인턴

청년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실 정책 인턴인 박형진(25)씨는 우연한 기회에 의원실에서 일하게 됐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하고 의원실 식구가 된 박씨는 학창시절 총학생회 출신도 아니요, 정당에 가입해 활동한 경력도 없다. 각종 매체를 통해 정치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정도였다. 때문에 국회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씨와 의원실 간 인연은 그가 대학 재학 시절 김 의원이 만든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의원이 평소 그의 적극성을 눈 여겨 보고 정책 인턴 제안을 해온 것. 특히 행사 때마다 주목 받은 그의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등 문서작성 능력을 높이 샀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씨는 이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국책연구기관이 3년 간 특정 파스타집에서 8억원 가량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박씨가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활용해 만든 시각자료는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국감현장에서 시각물을 활용하는 것이 의원의 의정활동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고 박씨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박씨는 “파워포인트에 법인카드 모양 이미지를 만들고 결제 내역을 도표로 정리했는데 국감 현장에서 시각적 효과를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의 의원실 업무는 8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출근하면 각종 우편물과 의원 일정을 체크하고 의원실 홈페이지와 SNS를 모니터링한다. 의원실에서 법안을 발의할 때 공동 발의하는 동료 의원들의 도장을 10개 이상 받아오는 것도 그의 몫이다. 국정감사나 의원실 주최 각종 세미나가 열릴 때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된다. 박씨는 “의원실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참석하는 의원들의 얼굴을 일일이 알아보고 의전을 해야 하는데 가끔 헷갈려서 진땀을 흘릴 때도 있다”며 “그래도 이 모든 경험이 피와 살이 된다”고 말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참 부지런히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그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인턴 활동을 하면서 국회 입법과정이나 시스템 등을 파악한 경험이 무슨 일을 하든지 큰 밑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일했던 된 은수미 의원실 정소희 인턴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정소희(25)씨는 환경단체 녹색연합 인턴으로 일하다가 단체 추천으로 의원실에서 일하게 됐다. 은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만큼 이전 경력을 살려 환경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정씨의 가장 큰 고충은 부모님이나 삼촌 뻘 되는 피감기관 소속 직원들에게 자료요청을 할 때다. 자료를 내주면 꼬투리를 잡힐 것이 뻔해 ‘못 준다’고 버티는 피감기관을 구슬리거나 때로는 언성까지 높여가면서 자료를 받아 질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저보다 스무살 많은 분들을 다그칠 때면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그게 제 일”이라면서 “20대 청년으로 부처장관이나 기관장, 국무총리 같은 사람들에게 질의서를 통해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인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전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평소 정치에 막연한 불신을 가진 쪽에 가까웠지만 13개월째 국회에서 일하며 생각을 바꾸게 됐다. 그는 “국회는 사회의 모든 현안을 맨 처음 접할 수 있는 곳”이라며 “국회의원은 놀고먹는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와 보니 열정적인 분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최근 비례대표인 은 의원이 4월 29일 실시되는 성남 중원 보궐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정씨의 하루는 더 분주해졌다. 비례대표 시절에는 지역구가 없었지만, 챙겨야 할 지역이 생기면서 여의도 국회가 아닌 성남 사무실로 출퇴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프다’는 사소한 고충부터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까지 쏟아지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민원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 장학금 선정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따져보고, 제도 변경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체크하는 게 그의 주된 임무가 됐다. 정씨는 “평소에 느끼는 사소한 불만들에서 새로운 법안이 탄생한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19대 국회의원 평균 나이가 53세 이상인 만큼 국회에는 청년들의 ‘젊은 감각’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다양한 진로를 모색 중”이라는 그는 “국회에서의 경험을 살리면 시민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진로 탐색이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가 꿈인 박원석 의원실 김경용 인턴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에서 6개월째 정책인턴으로 일하는 김경용(30)씨는 작정(?)하고 의원회관과 인연을 맺은 케이스다.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6ㆍ4 지방선거 당시 마포구 주민들이 만든 ‘마포파티(지역정당을 표방하는 풀뿌리 조직)’소속으로(실제로 무소속) 출마한 기초의원 선거사무장으로도 일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정치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의원실에서 정책인턴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한다. 김씨는 “마포파티는 법에서 정한 정당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식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의원실에서 그가 맡은 주요 임무는 홍보다.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하고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의원실 뉴스레터도 직접 제작한다. 의원 수행 전담비서가 있긴 하지만 의원 일정을 직접 쫓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의원 동정을 홈페이지에 직접 올린다. 김씨는 “의원님 홍보에 있어 사진은 생명”이라며 “사진뿐 아니라 웹에디터 부분은 어깨 너머 아는 수준인데 그 정도로 안 될 것 같아서 책도 보고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밖에 있을 때는 법안 통과 여부 등 결과만 보였는데 와서 보니 사소한 것 하나도 설득하는 과정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국회가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외부에서는 결과물만 보게 되고 더 치밀한 설득과정을 못 보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20ㆍ30대의 정치적 무관심과 관련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며 “근거는 낮은 투표율이라는 건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투표를 안 하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일베도 성향을 떠나서 굉장히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고 있지 않느냐”며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정치가 우리 삶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배우지 못했고 친구를 페이스북으로 사귀는 등 사회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이해한 것일 뿐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최종 목적지도 정치권이다. 하지만 인턴으로 일하면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는 “각종 현안에 대한 결정이 미리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정치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순간 판단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며 “한국은 정치 경력을 좋게 봐주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정당 가입은 취업에서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많이 배워 국민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