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녀 참변’ 종로 여관 양쪽 도로
1.5톤 트럭도 가까이 접근 못해
펌프차들 대로변서 물 뿌리기도
인근서 대형 화재만 네 차례
주민 도로 확장 계속 요구해도
소방도로 정비 공사 더디게 진행
종로 서울장여관 방화 참사로 겨울 방학 서울 나들이에 나섰던 전남 장흥의 세 모녀 등 투숙객 6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깊은 잠에 빠진 새벽에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투숙객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지만, 여관이 위치한 종로5가 뒷길이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골목이라 피해가 컸다는 지적과 안타까움이 제기된다. 그리고 안타까움은 사망한 6명이 모두 저렴한 숙소를 찾아 모여든 저소득층 사람들이라는 점, 참사가 빚어진 여관이 공교롭게도 개발에 밀려난 서민과 영세상인들이 떠밀리듯 모여들었던 ‘피맛길’이라는 점에서 배가 되고 있다.
2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서울장여관에서 불이 난 건 20일 오전 3시8분.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이 도착한 시간은 오전 3시11분쯤이었다. 이후 소방차량 50대와 소방관 180여명이 속속 현장으로 모여들었지만 소방차량은 여관 가까이로 갈 수 없었다. 여관 양쪽 도로는 1.5톤 트럭도 접근이 어려운 너비로 직분사가 가능한 3.5톤 펌프차는 애당초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결국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펌프차가 기껏 70m 거리. 소방 관계자는 “종로5가 대로변에서 여관을 향해 물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불이 완전히 진화된 시간은 오전4시4분, 진압에 1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여관 인근 주민들은 “예상했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여관이 자리잡은 곳은 현재 종로1가부터 종로5가까지 이어진 일명 ‘피맛길’.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가는 고관들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피마(避馬)’에서 유래한 길이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진 종로1가 쪽 ‘피맛골’은 이 전체 길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또한 이 곳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종로 지역 상권이 급속히 개발되고 갈 곳 없는 음식점,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영세상인들이 몰려 든 곳이기도 하다. 전체 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종로1가 ‘피맛골’에는 식당 80곳이, 불이 난 여관이 있는 종로5가 뒷길에는 숙박업소만 12곳이 몰려 있다.
영세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곳이다 보니, 골목 자체가 협소하다 보니 불이 났다 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지곤 했다. 화재로 10곳 이상 점포가 타버린 경우만 1990년, 2002년, 2003년, 2013년 4차례에 이른다. 특히 2013년 종로1가 ‘피맛골’ 화재는 19개 점포가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이때도 소방차 66대가 동원됐지만, 실제 진화에 활용된 소방차는 6~8대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일단 길부터 제대로 정비를 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지만, ‘좁은 도로’를 조금만 넓히면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화재가 난 종로1가에는 피맛골 입구까지 들어가는 200m 길을 넓히는 공사가 조금씩 진행돼 작년에 비로소 3.5톤 펌프차가 들어갈 정도로 정비가 됐다. 20년 넘게 생선구이집을 운영한 채모(68)씨는 “큰 불이 날 때만 해도 사람 2~3명 지나가면 낄 정도로 비좁았지만 지금은 소방차가 안쪽까지 들어올 수 있으니 안심된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장인 이기환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2,000~3,000ℓ 물탱크를 가진 펌프차가 현장에 가까이 갈 수 있느냐는 화재 진압에 굉장히 중요한 변수다”라며 “종로 같이 길이 오래돼 좁고 복잡한 곳은 최대한 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소방도로만이라도 확보되며 대형 화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ㆍ사진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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