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건부 식사지침자문위 결론, 심장병·당뇨병 연관 경고는 유지
전문가 "달걀 섭취 실보다 득" 영양실조 우려 노인에 필수식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낮추려면 포화·트랜스지방 덜 먹어야
달걀은 혈관 건강의 적인가? 친구인가?
‘달걀=콜레스테롤’이라고 여겨 심장질환 환자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은 섭취를 꺼렸다. 실제로 달걀 한 개의 노른자에는 185~240㎎의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하루 콜레스테롤 섭취 권장량인 300㎎에 근접한 수치다. 그런데 최근 콜레스테롤에 대한 사면조치가 이루어졌다. 미국 보건부 자문기관인 식사지침자문위원회(DGAC)는 달걀 등 식품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은 유해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1961년 미국심장협회(AHA)가 ‘콜레스테롤이 심장질환을 비롯한 성인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콜레스테롤을 위험요소로 분류한 이래 50여 년간 낙인 찍혀 온 불명예를 벗게 된 것이다.
콜레스테롤, ‘위험 영양소’ 불명예 벗어
미국 최고 영양 관련 자문기구인 DGAC가 내놓은 권고안은 “콜레스테롤은 과잉 섭취를 걱정할 영양소가 아니다”라며 “현재 유효한 증거들은 식이성 콜레스테롤 섭취와 혈중 콜레스테롤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DGAC는 “지난 5년간 연구결과, 정상인이 하루 달걀 하나 정도를 섭취해도 심장병 발병 가능성이 커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다만 당뇨병ㆍ심장혈관질환 환자는 콜레스테롤이 다량 함유된 식품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하루 콜레스테롤 섭취량을 300㎎으로 제한한다’는 현행 콜레스테롤에 대한 경고를 철회하는 획기적인 내용이다.
다만 DGAC는 이번 권고안에 심장병과 관련 있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경고를 철회하지 않았다. 또한, 당뇨병 등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음식 섭취를 계속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노태호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이번 콜레스테롤 위험 경고 철회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 국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만약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면 그 동안 지침대로 콜레스테롤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달걀이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미국 심장 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전 미국 코네티컷대 의대 교수)는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란 책을 통해 콜레스테롤 무해론을 주장했다. 콜레스테롤이 약간 높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연구 논문도 발표됐다. 다카다 아키카즈 일본 하마마쓰대 의대 명예교수는 11년 동안 오사카 주민 1만 여명을 대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와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높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220㎎/㎗를 넘어도 사망률에는 영향이 없었고, 남성은 280㎎/㎗를 넘지 않는 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낮았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도 5년마다 개정하는 건강 안내서에서 기존의 콜레스테롤 섭취 한도(성인 남성 750㎎, 여성 600㎎ 이하)를 최근 제외했다. 일본의 개정 건강안내서에는 “달걀 등 식품으로 섭취한 콜레스테롤 양에 따라 간이 콜레스테롤 생산을 조절하므로 식품 속 콜레스테롤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아직까지 콜레스테롤 목표량 개정 관련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달걀, 각종 질병 예방의 필수 식품”
국내 전문가들은 “달걀을 먹는 것이 실보다 득이 많다”는 입장이 주류다. 김상현 서울대 보라매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달걀에 함유된 콜레스테롤로 인한 건강상 문제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상반된 연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심혈관질환ㆍ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달걀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있지만 일반인은 하루 두 개 정도를 자유롭게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한귀정 농촌진흥청 가공이용과 연구관은 “달걀의 콜레스테롤 함량은 평소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나 문제가 될 정도”라며 “달걀에는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과 근육 감소를 예방하는 단백질, 빈혈 예방을 돕는 철분 등이 함유돼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영양실조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노인에게 달걀은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필수 식품”이라며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포화지방을 낮추려면 달걀을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의 80% 정도는 간에서 생성되는 체내 합성분의 몫이다. 달걀 포함 식품 속 콜레스테롤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나머지 20%에 불과하다. 한 연구관은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이용해 달걀 프라이를 하거나 찐 달걀, 삶은 달걀을 즐겨 먹으면 콜레스테롤 섭취를 더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달걀의 콜레스테롤에만 집착해 흑백논리를 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콜레스테롤은 달걀의 한 성분일 뿐이므로, 달걀을 콜레스테롤이란 좁은 관점에서 보지 말고 달걀 전체 영양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달걀은 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 D, 치매를 예방하는 콜린,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인 루테인 등이 함유돼 있다”며 “오히려 달걀에 함유된 레시틴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포화ㆍ트랜스 지방 섭취 줄여야
전문가들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면 달걀 새우 바닷가재 등 식품 속 콜레스테롤이 아니라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정제(refined) 탄수화물을 덜 먹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현경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달걀은 쇠고기ㆍ돼지고기에 비해 포화지방이 덜 들어 있다”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불포화지방이 꽤 많이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이란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문 교수는 “달걀은 값싼 육류 대체식품으로 영양상태가 불량하기 쉬운 노인, 저소득층, 임신부, 영ㆍ유아, 다이어트 중인 사람, 양질의 단백질이 필요한 간질환ㆍ신장질환자에게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라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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