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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민간인사찰까지.. 시대 바꾼 내부제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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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민간인사찰까지.. 시대 바꾼 내부제보자들

입력
2017.0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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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소송전, 생계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과 선거비리 등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공익신고자들의 역할이 있었다.

#1 “보도지침 공개”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

1988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문화공보부 청문회에 출석한 김주언(맨 오른쪽) 전 한국일보 기자가 문공부의 보도지침에 대패 증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8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문화공보부 청문회에 출석한 김주언(맨 오른쪽) 전 한국일보 기자가 문공부의 보도지침에 대패 증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80년대 신군부 정권이 언론을 통제한 보도지침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거의 매일, 기사의 내용을 규제한 ‘보도지침’을 작성해 언론사에 넘겼다. 1986년 8월 김씨는 약 1년치 보도지침을 복사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건넸다. 이는 월간 ‘말’지 9월 특집호에 실렸고 이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규탄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언론통제 실태가 드러났다.

김씨는 그 해 12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 구속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으나 87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94년 재차 보도지침 폭로와 구속기소가 이어졌고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만들어 언론 운동에 몸 담은 그는 최근 출범한 ‘내부제보실천운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2 “재벌 감사에 외압”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1990년 7월 13일 석방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이 가족들을 만나 웃고 있다. 그는 감사원과 재벌 유착 관계를 폭로했다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날 법원은 그의 보석허가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7월 13일 석방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이 가족들을 만나 웃고 있다. 그는 감사원과 재벌 유착 관계를 폭로했다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날 법원은 그의 보석허가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5월에는 재벌과 감사원의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이문옥 당시 감사원 감사는 감사원이 재벌기업의 땅투기를 조사하던 중 압력과 로비를 받고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일간지에 제보했다. 감사에서 재벌의 비업무용(투기목적) 부동산이 전체 부동산의 43%나 돼, 1.2%에 불과하다는 은행감독원 발표가 허구라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상부의 지시로 돌연 감사가 중단된 것이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작 첫 보도 나흘 만에 전격 구속된 것은 고발자인 이 감사였다.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였다. 파면당한 그가 끝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고, 파면 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한 것은 1996년이었다.

#3 “軍보안사가 민간인 사찰” 윤석양 전 이등병

1990년 10월 윤석양 당시 이병이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개입된 사실을 양심선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10월 윤석양 당시 이병이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개입된 사실을 양심선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10월에는 윤석양 당시 이병이 국군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 보안사를 탈영한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양심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는 “학생운동 전력을 빌미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으며, ‘청명계획’ 제하의 사찰 대상자 명부철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한승헌 김수환 등 사회 각계 인사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양심선언 뒤 윤 이병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은 보안사, 경찰 등으로부터 미행을 당했고, 윤씨는 1992년 기무사에 체포돼 군형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받았다.

그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는 매서운 비판을 받았고,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는 등 기구개편을 거쳤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기무사 개혁에 더 박차를 가했다. 악명 높은 ‘서빙고 분실’이 폐쇄된 것이 이 때다. 윤씨는 자신의 양심 고백을 “고문에 굴복해 사찰에 동참한 나약한 나에 대한 자책의 산물”이라고 불렀다.

#4 “軍이 부정선거 강요” 이지문 전 육군 중위

군부재자 투표부정을 폭로한 이지문 중위가 1992년 5월 4일 이병으로 강등돼 전역한 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군부재자 투표부정을 폭로한 이지문 중위가 1992년 5월 4일 이병으로 강등돼 전역한 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군 부정선거 시비가 사라진 것은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당시 육군 중위)의 고발 덕분이다. 1992년 당시 육군 제9사단 28연대 2대대 6중대 소대장이었던 이 중위는 14대 총선을 이틀 앞두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이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장병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도록 강요하는 정신교육을 하고, 공개투표, 기표검열 등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수방사 헌병대는 근무지이탈로 즉각 그를 연행했고, 국방부는 이틀 만에 “이 중위 증언은 허위”라고 주장했지만, 그 해 12월 대선부터 군 부재자투표 장소는 영외로 변경됐고, 군 부정선거 시비는 사라졌다. 이 본부장은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불명예 전역을 당했지만, 약 4년 간의 법정 투쟁 끝에 1995년 대법원에서 파면 취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을 지낸 뒤 호루라기재단 등에서 활동하며 내부고발자들을 도왔고, 최근에는 연세대 연구교수 등을 지내고 있다.

#5“오염된 혈액 유통 고발” 적십자 직원들

오염혈액 유통 실태는 적십자사 직원 김용환(왼쪽부터), 임재광, 이강우, 최덕수씨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오염혈액 유통 실태는 적십자사 직원 김용환(왼쪽부터), 임재광, 이강우, 최덕수씨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의 혈액 유통 방식이 대폭 개선 된 것은 용기를 낸 적십자사 직원들 덕분이다. 김용환ㆍ임재광ㆍ이강우ㆍ최덕수씨는 2003년 9월부터 약 1년간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유통한 사실을 언론과 부패방지위원회 등에 제보했다. 전산시스템 관리 과정에서 혈액 부실 관리실태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게 계기였다. 에이즈 검사 등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혈액이 공공연히 유통되는 사례를 취합해 세상에 알렸다.

증언 후 적십자사는 오히려 정보 유출 혐의로 제보자들을 고발했고, 김용환씨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48시간 만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노조의 해임건의 등 각종 압력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어진 감사원 감사에서 오염된 혈액 수혈로 감염된 피해자 20여명이 확인됐다. 적십자사 총재, 사무총장 등이 사직하거나 해임됐고 직원 12명이 징계처분을 받았고 혈액 관리시스템이 대폭 개선됐다. 진실을 밝힌 네 사람은 내부의 눈총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갈채를 보냈다. 각종 수상 영예도 이어졌다. 김씨는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대표를 맡고 있으며 4인 모두 적십자사에 근무 중이다.

#6“삼성이 검찰에 불법로비” 김용철 변호사

2008년 12월 김용철 변호사가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석,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12월 김용철 변호사가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석,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용철 변호사도 빼 놓을 수 없는 증언자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으로 일한 그는 그룹이 임직원명의 차명계좌로 50여억원 비자금을 관리하며 고위 검찰간부 등에게 로비자금으로도 제공한 일을 2007년 10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제보했다. 사제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알리면서 전ㆍ현직 검사 대상 불법로비 문제가 공론화됐다.

폭로 직후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이건희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준웅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됐고, 수사 결과 2008년 4월 이 회장 등 10명이 불구속 기소됐고, 2009년 8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을 통한 배임 등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2008년 변호사사무실을 열었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에는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에 임용되기도 했다.

#7“軍 납품비리 폭로” 김영수 전 해군소령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2011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계룡대 납품비리 고발' 당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2011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계룡대 납품비리 고발' 당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에는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당시 해군 소령)의 신고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9억원대 납품비리가 드러났다. 당시 김 소령은 내부절차에 따라 육군 헌병, 해군 헌병, 국방부 감찰단 등에 수 차례 비리를 고발했지만, 돌아 온 것은 난데 없는 근무평점 최하 등급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같은 해 10월 MBC ‘PD수첩’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후에야 국방부가 다시 수사를 개시해 관련자 31명이 처벌됐다.

이듬해 국민권익위원회는 그에게 ‘부패방지 부문 훈장’을 수여했지만, 정작 군은 그의 교관 자격을 박탈하는 등 징계로 응징했다. 훈장 수훈 4개월 만에 전역한 그는 권익위 공채에 합격해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한 활동에 전념 중이다.

#8 “이명박정부 민간인사찰 공개” 장진수 전 주무관

장진수(왼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지난달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부제보실천운동'의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장진수(왼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지난달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부제보실천운동'의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전모를 드러낸 것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다. ‘PD수첩’의 보도로 사찰 의혹이 불거지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지원관실이 압수수색을 앞두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등 증거인멸에 나선 사실을 한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밝혔다. 정부가 지속적,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했으며, 검찰 압수수색 날짜를 사전에 파악했고, 증거인멸을 위해 하드디스크 디가우징까지 실시한 자초지종이 모두 그를 통해 드러났다. 그 역시 최근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한 ‘내부제보실천운동’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리=한국일보 DB콘텐츠부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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