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9년인 1795년 윤2월 13일 수원 화성행궁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탄신 60주년 잔치다. 혜경궁은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奉壽堂) 안에 머무르고, 그 바로 앞 왼편에 정조가 자리를 잡았다. 융복(戎服ㆍ왕을 호위할 때 입는 군복)을 차려 입은 친인척과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당에는 여령(女?ㆍ궁중무용을 하던 여성)들이 다양한 궁중정재(呈才ㆍ무용)를 선보였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렇듯 세밀하게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23일 동국대 박물관이 소장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6호 ‘봉수당진찬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고 예고했다.
그림에서 봉수당으로 통하는 중앙문 밖에 길게 늘어선 백관들의 모습이 행사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림 속 마당에선 여령들이 ‘선유락’을 추고 있다. 신라시대 귀족의 뱃놀이에서 유래한 선유락은 여러 색으로 꾸민 배를 가운데 놓고 닻줄을 붙잡아 배를 휘감으며 추는 춤이다. 위대한 사람을 그리지 않는 조선시대 기록화 방식에 따라 혜경궁이나 정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혜경궁이 자리한 봉수당 안쪽은 구슬발로 가려져 있고, 정조의 자리임을 암시하는 호피방석이 있다. 그 앞에는 왕에게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불리는 복숭아 선도(仙桃)를 바치는 모습도 보인다.
‘봉수당진찬도’는 정조가 1795년 8일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 현릉원(顯隆園)을 다녀온 행사를 기록한 병풍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 중의 한 폭이다. 한양 도성이 아닌 화성행궁에서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연 데에는 화성 건설의 명분을 세우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의도가 숨어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되는 ‘봉수당진찬도’는 ‘화성능행도병’의 다른 그림과는 떨어진 단폭(單幅)으로만 전해 온다.
또한 경북 경주시 노서동 호우총에서 출토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그릇)’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그릇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특별하다. 광개토대왕이 죽은 지 3년 뒤인 을묘년(415년)에 그를 기념하는 의미로 만든 열 번째 그릇이란 뜻이다. 명문 위에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물 정(井) 문양도 있다. 이 그릇이 신라의 묘에서 발견된 것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활발하게 영토확장을 했던 5세기 고구려가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이외에 16세기 과거 합격 동기생 5명이 광주 희경루에서 만난 것을 기념해 그린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와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조성된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미륵여래삼존상(石造彌勒如來三尊像)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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