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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네 발 천사' 공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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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네 발 천사' 공혈견

입력
2015.09.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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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혈액은행 1곳서 대부분 유통

문제 생길 경우 전국에 확산 우려

사람 위생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농림축산부는 실태조사 없이 방관

빈혈 증세를 보인 반려견 쿠키가 23일 서울 마포구의 웨스턴동물의료센터 응급실에서 '공혈견'의 혈액을 수혈 받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빈혈 증세를 보인 반려견 쿠키가 23일 서울 마포구의 웨스턴동물의료센터 응급실에서 '공혈견'의 혈액을 수혈 받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동물병원인 웨스턴동물의료센터 응급실. 왼쪽 앞다리에 작은 바늘이 들어가자 쿠키(12세ㆍ수컷ㆍ슈나이저)는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쿠키는 전날부터 기력이 떨어지고 소변 색이 변해 이날 병원에 실려왔다. 쿠키에게 내려진 진단은 면역매개성용혈성빈혈(IMHA). 혈액 속 적혈구가 손상되어 빈혈이 온 것이다. 쿠키는 4시간 가량 수혈을 받아 급한 고비를 넘겼다. 홍연정 센터장은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쿠키처럼 빈혈이 생겼을 때 응급 수혈을 하게 된다”며 “급박한 상황이 몰릴 경우 하루에 4~5마리씩 수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쿠키에게 수혈된 혈액은 강원도 속초의 ‘동물혈액은행’에서 구입한 것이다. 체중 5kg를 기준으로 한 번 수혈에 30만원 정도가 든다. 이 은행은 ‘공혈견(供血犬)’이나 ‘공혈묘(供血猫)’를 키우고 혈액을 뽑아 판매한다.

반려동물의 노령화와 수의료 기술 발달로 반려견(묘) 수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이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공혈견이나 공혈묘에 대한 관리체계는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건국대 등 주요 대학동물 병원에서 하루 1건 이상 반려견(묘)에게 수혈을 할 정도로 혈액 수요가 많은 상황이지만, 국내에는 공혈견(묘)이 몇 마리가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육 조건, 채혈 기준 등 관리 기준도 통일돼 있지 않다. 일부 대학동물병원이나 한국동물혈액은행이 자체기준에 따라 공혈견(묘)을 키우고 채혈을 할 뿐이다. 국내 동물병원에 유통되는 혈액 대부분이 민간기업인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보관돼 있는 것도 문제다. 아직까지는 문제는 없었지만, 자칫 혈액에 문제가 생길 경우 3,900여 개로 추산되는 전국 반려동물병원 전체로 문제가 확산될 수 있다. 공혈견이 어떻게 ‘입양’되는지,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도 베일에 쌓여있다. 이곳의 개나 고양이가 식용 개 농장으로 팔려갈 경우 사람의 위생 문제로까지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2년 국회에서 반려동물 수혈 혈액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실태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상태다. ‘동물혈액판매가 인허가 업종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 감독할 법적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영국 등에는 수의사협회나 동물보호단체들이 만든 공혈견 관리지침이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공혈견 관련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수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공혈견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위생과 동물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실질적인 규제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려동물을 살리기 위해 평생 갇혀 피를 뽑히며 살아야 하는 동물들을 따로 사육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논란거리다. 공혈견 사육 대신 일반견을 등록시켜 필요에 따라 헌혈을 시키는 헌혈견 육성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있는 나라도 있다. 김휘율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국내에선 대부분 소형견을 키우고 있어서 헌혈견을 모집하는 게 쉽진 않다”면서도 “가장 바람직한 것은 동물도 헌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보호자의 동의 하에 채혈할 수 있는 헌혈견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공혈견에 대하여

▶동물도 수혈을 받나: 개나 고양이도 사람처럼 혈액형도 있고, 응급 시에는 수혈을 받는다. 현재까지 밝혀진 개의 혈액형은 13종류인데, 개는 수혈 받기 전에는 항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수혈은 혈액형과 관계 없이 가능하다. 반면 고양이 혈액형은 3종류로 사람과 마찬가지로 혈액형을 맞춰서 수혈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수혈이 사람의 헌혈과 다른 것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피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공혈견를 두는 대학은 어디인가: 국내에선 서울대(대형견 5마리+은퇴견 2마리 거주), 경상대(중형견, 대형견 등 4마리) 등 일부 대학동물병원들이 직접 공혈견을 키우고 있지만 수혈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기견이었는데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온 대형견을 공혈견으로 활용하거나, 직접 공혈견으로 키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어떤 곳: 국내 동물병원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혈액을 공급하는 곳은 한국동물혈액은행이다. 본지가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방문 취재를 요청했지만 방역 문제로 공개는 힘들다고 밝혔다. 홈페이지에는 2003년 세계2위 규모로 공혈견 육성 농장을 증축했고, 200여마리의 공혈견을 키우고 있으며 2011년부터 고양이 혈액도 공급한다고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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