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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아버지를 기록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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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아버지를 기록한 아들

입력
2017.11.23 16:4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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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는 아버지 죽음을 지켜보며 깨닫는다. 작가 자신에게 아버지는 가장 강렬한 증오의 대상이면서 깊은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문학동네 제공
필립 로스는 아버지 죽음을 지켜보며 깨닫는다. 작가 자신에게 아버지는 가장 강렬한 증오의 대상이면서 깊은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문학동네 제공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ㆍ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284쪽ㆍ1만3,800원

누구였더라.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홀로 무덤가에서 울다가, 가족이 죽었을 때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슬퍼하는지 기억하려고 얼굴 근육을 만졌다던 배우가. 얼굴 더듬는 자기 자신이 징그러웠다던 그 배우가. 현대 미국문학의 표본으로 불리는 필립 로스의 에세이는 10 년 전 한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떠올리게 한다. 죽어가는 아비의 말과 표정을 기록하며 슬퍼하다, 분노하다,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끝내 저주하는 작가의 모습이 읽는 내내 그려진다. ‘에브리맨’ 등 대표작에서 비정할 만큼 냉정하게 죽음을 그렸던 작가는 혈육의 죽음에서만큼은 나름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을 보낸다. 물론 트레이드마크인 냉소적인 유머도 포기하지 않은 채.

오른쪽 눈 시력을 거의 잃은 것을 빼곤 여든이 넘도록 “경이로울 만큼 건강해 보였”던 작가의 아버지 허먼 로스는 어느 날 아침 얼굴 반쪽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안면신경마비를 진단받은 아버지는 곧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양쪽 눈의 백내장이 몇 달 사이 심해지고 작가 아들은 이 모든 질병의 발단이 “대형 (뇌)종양”임을 알게 된다. “수술을 해도 종양의 피해를 되돌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되묻는다. “내가 좀비가 되는 거냐?” 아버지는 그렇게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

오십을 1년 앞둔 작가 아들은 여러 “세계적인 의사”들을 만난 끝에, 여든 여섯의 아버지가 끔찍한 수술을 견뎌내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잃지 않고, 아버지 인생을 서글퍼하던 아들은 평생 고수해온 아버지의 한결같은 고집과 성실함에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이민자 거리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오. 나는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한 번도 용기를 잃거나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소. (...) 그런 내가 요구하고 있는 건 정말 내가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는 거요- 팔십육 년을 한 번 더!”

인간성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수술을 거부하기로 한 아버지를 보며 작가는 괴로워한다. 한편으로 아버지가 떨어뜨린 틀니를 맨손으로 집어 들면서, 화장실 전체에 흩뿌려진 아버지 똥을 치우면서, 깨닫는다. 작가 자신에게 아버지는 가장 강렬한 증오의 대상이면서 깊은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다는 건 아버지라는 인간,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 존재 자체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작가에게 죽음이란 한 세계가 끝나는 것임과 동시에 가장 치열한 삶의 형태다. “나의 아버지는 그냥 여느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에게서 미워할 모든 것을 갖추고 사랑할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그런 아버지였다.”

투병 과정에서 옛 추억이 플래시 백처럼 엮이는 에세이는 작가의 감정을 상상하기보다 공감하며 읽을 때 흠뻑 빠질 책이다. 가장 절실했던 이의 죽음을 오랜 기간 지켜봐야 했던, 그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시종 고민했던 독자에게 권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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