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북제재 완화ㆍ해제 여부가 한반도 주변 관련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국이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 이전에는 제재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대북제재 조기 완화를 주장하면서 또 다시 ‘북ㆍ중ㆍ러 대 미ㆍ일’ 대립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13일(현지시간)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합의에 따라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표시한 만큼 북한은 실제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네벤쟈 대사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회의 개최 여부와 관련,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련 인사들로부터 얘기를 듣는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며 의욕을 보인 뒤 “북한과 협상 파트너들의 행보는 쌍방향 통로가 돼야 한다”며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연말까지는 지금의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ㆍ러가 한 목소리로 제재 완화를 주장함에 따라 관련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북미 회담 당일인 지난 12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대북제재 완화ㆍ해제를 주장했던 중국은 14일에도 “대북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각국이 정치적 해결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ㆍ러 두 나라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는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 적극 개입하려는 공동행보의 일환일 수 있어 특히 주목된다. 양측은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지난해 7월 양국 정상이 중국의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동시진행)에 기반해 합의한 ‘한반도 로드맵’을 한껏 추켜세웠다. 6자회담을 염두에 둔 듯한 다자간 협력체 구성도 동시에 요구했다. 북한의 핵포기 과정에서 한반도가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력 하에 놓이지 않도록 적극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사실 대북제재 완화는 북한 입장에서 체제 안전 보장과 함께 가장 현실적인 문제여서 북미 정상회담 후속조치 논의 과정에서 언제든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중ㆍ러 양국이 미리부터 북한의 원군을 자처함에 따라 북한이 미국과 대립하는 상황이 될 경우 목소리를 키울 공산이 커졌다. 실제 북한과 중국은 이달 28일부터 사실상의 대북제재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북한 고려항공의 평양~청두(成都) 전세기 관광노선 운항을 시작한다. 이는 대북제재 완화에 극히 신중한 미국ㆍ일본과 대립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북미 회담 결과 설명과 협조 요청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아직 존재한다”며 대북제재 완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ㆍ러 양국은 한반도 정세 급변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외되는 것을 공통적으로 우려한다”면서 “대북제재 완화 문제가 대화ㆍ협상의 진전이라는 명분 하에 북한을 대변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할 수 있는 통로이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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