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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心과 靑心 사이… 비서실장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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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心과 靑心 사이… 비서실장의 조건

입력
2015.01.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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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 박지원 소통 정치 능해

내향적 DJ의 단점 보완 '시너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닮았다고 한다.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일처리 스타일과 내향적이고 친화력이 떨어지는 성격, 그리고 기본적으로 닫힌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DJ는 흡사하다는 것이다. 두 대통령의 행보는 신임하는 최 측근인 정치인 박지원과 김기춘을 각각 비서실장으로 곁에 둔 것까지도 유사하다. DJ를 오래 보좌한 박지원 의원 역시 비서실장 시절 ‘소통령’‘代통령’으로 불리며 실세로 통했다. 하지만 두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는 다르다. 한 사람은 불통의 아이콘이 됐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적어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는 그 원인을 비서실장의 차이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DJ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한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DJ는 말도 없고, 술도 안 해서 친화적인 소통이 어려운 스타일이었다”며 “하지만 DJ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소통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DJ의 결정적인 약점은 정반대 스타일의 비서실장이 메꾸었다. 활동적인 정치인 출신의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DJ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두 사람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청와대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자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웃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청와대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자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웃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실 대통령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 상쇄시키는 능력은 비서실장에게 가장 요구되는 조건 중 하나다. 정정길 전 비서실장은 이를 청와대 참모가 지녀야 할 첫 번째 조건으로 꼽기까지 했다.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통했던 5공 시절 김윤환 전 비서실장도 마찬가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해 평가 받았다.

김기춘 윗사람 보필 능하지만

불통 이미지 박 대통령과 유사

"최악의 궁합… 잘못된 만남" 평가

그러면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은 어떤 관계일까. 비서실장의 거취를 놓고 지금처럼 논란이 되고,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적도 없다. 문제의 출발은 두 사람의 스타일이 유사한데 있다. 청와대를 관찰해온 인사들은 불행히도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의 공통점으로 일방통행의 리더십을 꼽는다. 서로 똑 같다 보니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약점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양상이란 것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이를 “대통령과 비서실장으로서는 최악의 궁합”이라며 잘못된 만남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도 “비서실장이 소통부족의 대통령 국정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고, 그 이상 역할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는 청와대가 지난 2년 간 불통(不通)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8월 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8월 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그런 부담은 김 실장이 아닌 박 대통령에게,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30%마저 뚫렸고, 동시에 우왕좌왕하는 국가정책은 하루가 지나면 뒤집히고 있다. 최진 소장은 “김 비서실장이 시쳇말로 입 속의 혀처럼 윗사람을 잘 보필하는 데 능하고 카리스마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ㆍ정ㆍ청 간 만남 자체도 드물고 전화통화도 힘들다는 건 여의도에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대통령이 소통을 못해도 비서실장이 잘하면 이렇게 불통 논란이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권 성패의 核 … '소통 메신저' 찾아라

정부조직법에 근거를 둔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서실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ㆍ감독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승지가 정승판서보다 낫다는 말처럼, 권력의 힘은 늘 통치자와의 거리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 소통령, 왕실장으로 불린 실세들이 많았다. 하지만 비서실장의 고유한 역할은 언제나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하도록 하는 어려운 자리라는 것이다. 이내영 교수는 “대통령에게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으로 비서실장의 역할을 규정했다. 더구나 대통령 한 사람의 개성과 카리스마가 지배하던 시대가 지난 만큼 대통령의 성패는 유능한 참모, 특히 비서실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실장은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서도 컨트롤타워 청와대를 움직이는 막강한 실세형 비서실장에 속한다. 이전 박지원, 김중권 비서실장이 그에 비견된다. 그런 탓인지 김 실장처럼 자주 구설에 오르내린 역대 실장이 드물 정도다. 멀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부터 최근 비선실세 의혹과 민정수석 항명파동 등 각종 청와대발 악재의 한 가운데 있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통령이 있는데 비서실장이 이 만큼 부각된 것은 유례가 없는 비정상적 일”이라며 “비서실장을 바꾸라는 요구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라고 주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운영위에서 대통령 비서실 현황보고를 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김기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운영위에서 대통령 비서실 현황보고를 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이런 김 실장에 대해 사퇴론이 불거질 때마다 박 대통령은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여론에 귀를 닫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소통과 인적 쇄신이 안 된다는 게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인데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을 감싸고만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특유의 인사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최진 소장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물, 평소 검사 출신 같은 관료형, 그리고 배신 컴플렉스 때문에 야심이 없는 사람을 선호하는 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라며 “김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이 원하는 참모 모델에 가장 근접한다”고 봤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조직 개편이 마무리 되는대로 비서실장 교체를 한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최근 청와대와 내각개편과 관련,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임기 3년 차를 맞아 국정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이 체감하는 새로운 만들어 내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소폭 업무조정이 된 채 청와대에 건재한 마당이라 여론이 체감하는 변화는 이제 비서실장에 달려 있다고 정치권 인사들은 말한다. 싸늘해진 민심 앞에 내놓은 청와대 개편카드는 비서실장만 남은 것이다. 그러면 박 대통령에게는 어떤 비서실장이 필요할까. 한국행정연구원의 2013년 역대 비서실장 평가조사에서는 문재인(45.9%) 박지원(28.4%) 한승수(27.1%) 전 실장의 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나 같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대통령이 가진 약점을 보완하거나, 여론과 대통령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정무ㆍ정책적 역량을 펼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비서실장은 무조건 대통령 지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오판을 할 때 현명하게 조언을 해야 한다”며 김윤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그런 예로 들었다. 차기 실장에게 필요한 능력과 덕목을 보여주는 사례들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를 벗을지 여부는 결국 제2의 김기춘, 아니면 제2의 박지원을 찾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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