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이자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 정상이 3년 만에 만난 것 치고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중일 정상회담 분위기는 참으로 묘했다. 정식 회담이었는지, 면담이었는지도 모호한 현장 모습에, 시종일관 굳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 오고 간 대화의 내용 모두 잘 해보자는 의도 보다 잘잘못을 따져 보자는 기색이 강했다.
이날 중일 정상회담은 무엇이 이상했을까 따져본다. 첫째, 아베 총리는 인민대회당의 한 접견실에 일본 당국자들과 통역 등과 함께 먼저 도착해 시 주석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양국 국기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테이블도 없이 중국을 방문한 대표단과 접견할 때 사용되는 쇼파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정상회담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둘째로 한참을 기다린 아베 총리는 시 주석이 회담장에 들어서자 악수를 하며 웃는 얼굴로 무언가 인사를 말했지만 주석은 미소가 없는 굳은 표정으로 악수하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취재진 쪽으로 돌렸고 이후 아베 총리를 노려보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쌀쌀맞은 정도가 아니라 화 난 것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이날 오전 한중 정상회담때도, 전날 중러 정상회담 때도 시 주석의 반응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시 주석의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가득했다.
셋째, 중국 외교부가 이날 회담을 소개하는 방식도 보통의 정상회담과 달랐다. 만남을 정상회담을 지칭할 때는 쓰지 않는 ‘요청에 응했다(應約)’는 식으로 표현했다. 중국은 통상적인 정상 회담에서 자국 측 배석자로 3, 4명 정도를 소개하지만 이번에는 최근 일본과 ‘4개항’을 합의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만 배석자로 소개했다.
넷째,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회담 발언 내용을 보면 과거사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시 주석 발언이 70% 이상을 차지했고, 아베 총리의 발언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이도 보통 정상회담 내용 소개와는 전혀 다르다.
이에 대해 양보장(楊伯江)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교수는 “이번에 중일 정상이 잠깐 만난 것은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단초이자 양국이 지난 2년 간의 경색 국면에서 빠져 나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환구망(環球網)에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양국 관계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 길은 여전히 순탄치 않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이 더 큰 작용을 하고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일본에게, 특히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문제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메이스자이셴’이란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 “아베 총리를 만난 것에 대해 강력 반대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두부샤오즈’란 누리꾼은 “아베는 중국에서 중국 인민들의 강렬한 목소리를 똑똑히 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엔 아베 총리가 무대에 혼자 나와 기다리다 시 주석이 나타나자 먼저 손을 내 밀자 시 주석이 화가 난 듯 마지못해 악수를 하는 장면이 확산됐다.
한편 관영 CCTV는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회견 화면 장면을 내 보내지 않은 채 아나운서가 관련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CCTV는 시 주석과 다른 국가 정상들의 양자 회담 소식은 모두 화면과 함께 비중 있게 다뤘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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