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 돈풀기에 동참
“금리 인하 밑밥은 던졌다” 분석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16일 기자회견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차단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3년물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1.5%)를 밑돌고, 10년물은 물론 30년물 국채 금리까지 1%대로 진입하는 등 시장 기대감이 과도하게 금리 인하 쪽에 쏠려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대외여건이 현재처럼 크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조정했을 때 그에 따른 기대효과와 부작용이 있다”면서 “지금 상황은 대외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 기대효과가 확실치 않은 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충분히 예견된다”고 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은 경기대응 정책으로 볼 때 근본적 문제를 치유하는 데까지 시간을 확보해주는 성격이 강하다”며 “전 세계 중앙은행과 학식 높은 학자도 저성장·저물가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통화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인하 쪽 시그널에 더 주목한다. 8개월 만에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등장하고, 9조원 돈 풀기로 각국 중앙은행 행보에 동참한 것이 예사롭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김명실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한은은 2014년 8월ㆍ10월, 지난해 3월ㆍ6월 총 네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총 1%포인트 낮췄는데, 4차례 중 3번이 금리인하 소수의견을 낸 다음 달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간 금리 정책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전 시그널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던 만큼, 방향 선회까지는 아니지만 금리 인하를 위한 ‘밑밥’은 던져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가 지나친 인하 기대심리를 중립적으로 되돌려놓으려고 노력했을 뿐, 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거나 “현재까지의 외국인 투자자본 유출은 국내 외환건전성 차원에서 볼 때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는 그의 발언이 기존 매파적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명실 선임연구원은 “금리인하 반대논리 중 하나가 외국자본 유출인데, 이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총재가 직접 언급한 건 기존 입장을 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이날 배포한 통화정책방향 자료를 통해 내놓은 경기 진단 역시 지난달보다는 다소 후퇴했다.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던 한달 전 진단은 “내수 회복세가 약화한 가운데 수출부진이 심화되면서 개선흐름이 주춤하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기는 다소 엇갈리지만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상반기 중 기준금리를 낮출 거라는 데 강하게 베팅을 하는 모습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경기지표가 부진하고, 각 국이 금리를 낮추고 있어 한은도 4,5월쯤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한은의 금리인하 시기를 3월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학계는 여전히 신중론을 편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도 실물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가계부채 급증 등 부작용이 명확한 만큼 기준금리 인하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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