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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비즈니스] “죽이러 간다”는 BJ에 “패주고 와라” 돈까지 보내기도

입력
2017.09.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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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에 못낼 말, 대신 해줘 후련”

혐오에 대한 호응, 상식 뛰어넘어

채팅 메시지ㆍ별풍선 수치 보며

‘우리 편 많다’ 연대감 확인

대상 특정 못하면 법적 처벌 불가

“법이 사회문화 속도 못 따라가”

혐오가 콘텐츠가 되는 세상. 1인 방송에서는 혐오를 보면서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속시원함과 공감을 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유튜브 방송 캡처
혐오가 콘텐츠가 되는 세상. 1인 방송에서는 혐오를 보면서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속시원함과 공감을 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유튜브 방송 캡처

“5분짜리 영상 전체가 갓건배를 계속 욕하는 것이어서 처음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갓건배도 잘못했는데 왜 한쪽(갓건배를 욕하는 남자쪽) 잘못만 부각시키나. 그 영상 본 사람은 속이 후련했을 것이다.”

8월 초 유튜브 크리에이터 갓건배에게 욕설을 퍼붓고 신상정보를 공개한 크리에이터 신태일의 영상을 본 김모(29)씨는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갓건배가 키 작은 남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서 김씨가 느끼는 통쾌함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죽이러 간다”고 나선 BJ에게 “패주고 와라”고 맞장구치고 자기 돈까지 털어 후원금을 보낼 정도면 혐오에 대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런 심리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제도가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억눌러 온 (비뚤어진) 생각이 인터넷 1인 방송의 진행자가 혐오 발언으로 나 대신 불만을 폭발시켜 주자 여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말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익명의 공간에서 혐오에 동조하고 부추기는 행동으로 성장하기 쉽다. 곽 교수는 “사회적 제약 없이 내면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익명의 인터넷 공간”이라며 “익명성과 군중심리가 결합해 혐오가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언론진흥재단이 2016년 6월 20~50대 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혐오 표현을 가장 많이 접하는 경로는 인터넷(65.8%)이었고, 뒤이어 신문ㆍ방송 등 대중매체(16.5%), 직장ㆍ학교(7.2%), 사적 모임(3.8%) 순이었다.

혐오 방송의 시청자들은 채팅 메시지나 별풍선 수치를 보면서 ‘우리 편’이라는 연대감을 느끼며 혐오를 공유하고 증폭시킨다. 일베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력적 댓글이 혐오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는 분노와 혐오도 무제한 복제된다”며 “자극적인 콘텐츠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을 불러모으고, 그 안에서 생각이 공유되며 혐오가 증폭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인터넷에서 집단적인 혐오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처럼 인권이나 논리, 보편적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혐오가 사이다로 불리는 세계. 1인 방송에서 행해지는 혐오발언과 폭력, 엽기적인 행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쾌감을 주는 요소로 인식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혐오가 사이다로 불리는 세계. 1인 방송에서 행해지는 혐오발언과 폭력, 엽기적인 행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쾌감을 주는 요소로 인식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무분별한 군중심리는 다시 혐오 영상을 재생산한다. 갓건배에 대한 혐오가 시청자들의 힘을 얻자, “죽이겠다”고 찾아나선 방송이 이어진 것이 그런 사례다. 곽 교수는 “혐오 방송이 사람들의 혐오를 자극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확장된 시장이 다시 사람들의 혐오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발언의 수위가 높아도 혐오의 대상이 특정되지 않으면 현행 법규로는 제재하기 어렵다. 유승백 백승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특정 대상에게 혐오 발언을 한 경우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성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여성 일반, 지역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은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방송 출연자들끼리의 폭력적 언행은 양해된 행위로 볼 수 있어 이런 법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일상생활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 문화의 발전 속도를 법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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