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첫번째 시리즈로 변월룡전을 3일부터 5월 8일까지 덕수궁관에서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변월룡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개최된 적 없는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고려인 변월룡은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본토에서 러시아 사회주의를 계승하는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냈다. 레핀예술학교 교수였던 변월룡은 예술에 이념을 담고 혁명적 투쟁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붓질로 대상의 개성을 잡아내는 뛰어난 직관, 놀랄 만큼 풍부한 색채 등을 화폭에 담으며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변월룡이 소련 문화성의 명령에 따라 1953년 북한에 파견돼 15개월 남짓 머물며 여러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러시아 예술아카데미 시스템과 교과 과정을 토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수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가 북한 미술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알려진 것도 이때 작업을 두고 하는 것이다. 변월룡은 처음 밟은 북한 땅의 풍경과 삶을 담은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거기서는 고국에 대한 애정과 향수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북한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1부 ‘레닌그라드 파노라마’는 변월룡 작품의 토대가 된 러시아 아카데미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작가의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영혼을 담은 초상’은 변월룡의 초상화에 녹아 있는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을 보여주며, 3부 평양기행에서는 변월룡의 눈을 통해 당시 북한의 풍경과 인물을 엿볼 수 있다. 4부 디아스포라의 풍경에서는 작가의 개성과 미묘한 내면세계를 담은 풍경화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 맞춰 대를 이어 화가로 활동 중인 차남 펜 세르게이, 장녀 펜 올가도 방한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첫 회고전을 위해 18년을 노력하는 등 어렵게 전시를 연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덕수궁관 외에도 한국 순회 등을 통해 아버지 작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차남 세르게이는 특히 “아버지는 생전에 침착하시고 조용하셨고 인자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런 성격을 물려받지 못해 아버지께 야단도 많이 맞았다”고 회고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우선 변월룡이라는 화가 자체에 주목하고 그 후 변월룡을 매개로 한국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미술사의 공백기를 변월룡이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의 삶과 작품세계는 몇 년 전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문영대 지음ㆍ컬처그라프)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에서 변월룡전을 시작으로 이중섭(5~9월), 유영국(10월~2017년 2월)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차례로 열 계획이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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